이치마루 리노스케(市丸利之助, Ichimaru Rinosuke, 1891~1945)는 일본 제국 해군의 군인으로, 해군 항공 초창기의 비행사이자 장성(將星)이었다. 일본 사가현 가라쓰(唐津) 출신이다.
생애 초기와 항공 경력
이치마루는 1891년 9월 20일 사가현 가라쓰에서 태어났다. 1910년 해군병학교(에타지마)에 입학하여 1913년 118명 중 46등의 성적으로 졸업하고 해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후 장갑순양함 아즈마, 순양전함 곤고, 장갑순양함 이즈모 등에서 복무하였다. 1917년 해군 항공 과정에 입교하여 조종사가 되었고, 1918년 요코스카 항공대에 배속되었다. 이후 일본 최초의 항공모함 호쇼(鳳翔)에 탑재된 항공대에서 근무하기도 하였다.
1926년 시험 비행 중 사고로 대퇴골 골절과 두개골·안면 부상을 입어 약 3년간 요양하였다. 이 사고의 후유증으로 평생 다리를 절뚝이게 되었다. 요양 기간 동안 독서와 그림, 한시·와카(和歌) 작시에 몰두하여 시가(詩歌)에 능한 인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군사 경력
1935년경 조선 진해(鎭海) 경비부대에 배속되었고, 이후 요코하마 항공대장, 지치지마 항공대장, 제13항공대장, 스즈카 항공대장 등을 역임하였다. 중일전쟁 시기에는 우한 폭격 작전에 관여한 기록이 있다. 1942년 5월 소장(少將)으로 진급하였다.
이후 태평양 전쟁에서 동부 솔로몬 해전과 과달카날 전역에 참전하여 제1공격대를 지휘하였다. 1942년 9월 제21항공전대 사령관에 취임하였다가 1943년 귀국하여 제13항공대 사령관을 지냈다.
이오지마 전투
1944년 8월 제27항공전대 사령관으로 이오지마 섬에 부임하였다. 당시 이오지마의 항공대 전력은 미군의 선제 폭격으로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이치마루는 자신의 휘하 병력 약 2,000여 명을 육군의 구리바야시 다다미치(栗林忠道) 중장 지휘 하에 편입하여 방어에 협력하였다. 이치마루는 구리바야시의 심층 방어 전술과 달리 해안 및 비행장에서의 즉응 반격을 선호했다는 견해 차이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1945년 2월 19일 미군의 이오지마 상륙이 시작되었고, 이치마루는 해군 병력 약 7,000여 명을 지휘하였다. 3월 17일경 전사한 것으로 보고되어 중장으로 1계급 특진 추서되었으나, 실제로는 그 후에도 생존하여 3월 26일 최후의 반격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같은 날 기관총 사격으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사 당시 그의 시신은 구리바야시 중장의 시신과 마찬가지로 현장에서 회수되지 못하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
이치마루는 이오지마 전투 막바지에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보내는 서한을 작성하였다. 이 서한에서 그는 미국이 전전 일본을 비방하고, 일본의 개전이 미국의 대일 압박에 대한 대응이었다는 입장을 개진하였다. 이 서한은 전후 미군 측에 발견되어 미국 해군사관학교(아나폴리스)에 보관되었으며, 그 내용이 널리 알려지면서 역사적 사료로 다루어지고 있다.
유품과 대중문화
이치마루가 이오지마 전투 당시 휴대했던 가문의 군도(軍刀, 에도 시대의 도검)는 전후 미군 병사에 의해 전리품으로 취득되어 뉴저지주 지역의 골동품점을 거쳤다고 전해진다. 이후 이 도검은 이치마루의 유품으로 확인되어 일본으로 반환되었고, 가라쓰성 박물관에 기증 전시되었다가 도난 사건을 겪은 후 재차 회수되어 현재 유족들이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 군도의 세부 전승 과정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서술 차이가 있다.
그의 장녀 이치마루 하루코는 아버지가 남긴 시가(詩歌)를 모아 『시마루 리노스케 가집』(2006)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이치마루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Iwo Jima, 2006)에 등장인물로 묘사되었다.
이처럼 이치마루 리노스케는 일본 해군 항공의 초기 발전 과정에서 비행사이자 지휘관으로 활동한 실존 인물이며, 이오지마 전투의 주요 지휘관 중 한 명으로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