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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마다 히사토

이치마다 히사토(일본어: 一万田 尚登, 1893년 8월 12일 ~ 1984년 1월 22일)는 일본의 금융인이자 정치인이다. 제18대 일본은행 총재와 제58·59·60·64·65대 대장대신(재무대신)을 역임하였다.

생애

1893년 8월 12일 일본 제국 오이타현 오이타군 노쓰하루촌(현 오이타시)에서 태어났다. 구제 오이타현립 오이타 중학교와 구제 제오고등학교를 거쳐 1918년 도쿄 제국대학(현 도쿄 대학) 법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일본은행에 입행하여 1944년 이사에 취임하였고, 전임 총재였던 아라키 에이키치가 공직 추방되자 1946년 제18대 일본은행 총재가 되었다. 총재 재임 기간(1946~1954년) 동안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와 협력하여 전후 일본 경제 재건과 인플레이션 억제에 주력하였다. 당시 일본은행이 금융 정책에서 막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치마다의 정치력 덕분이었으며, 이에 세간에서는 그를 교황청에 비견하여 '법왕(法王)'이라 불렀다.

1951년에는 요시다 시게루 총리, 이케다 하야토 대장상 등과 함께 전권위원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에 참여하였다.

1954년 일본은행 총재에서 물러난 직후, 제1차 하토야마 이치로 내각에 대장상(재무대신)으로 입각하였다. 1955년 총선에서 하토야마 이치로의 일본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이후 보수합동으로 자유민주당이 창당되자 이에 참여하였다. 제2차·제3차 하토야마 이치로 내각에서도 대장상을 유임하였으며, 1957년 제1차 기시 내각(개조)에서 다시 대장상을 맡아 디플레이션 정책을 통해 물가 억제에 노력하였다. 1958년 제2차 기시 내각 출범과 함께 대장상에서 물러났다.

1969년 중의원 해산 당시 총선에 불출마하고 정계를 은퇴하였다. 1984년 1월 22일 심부전으로 사망하였으며, 향년 90세였다. 사후 훈1등 욱일대수장을 추증받고 정3위에 추서되었다.

주요 경력

  • 제18대 일본은행 총재 (1946년 6월 ~ 1954년 12월)
  • 제58·59·60대 대장대신 (1954년 12월 ~ 1956년 12월)
  • 제64·65대 대장대신 (1957년 7월 ~ 1958년 6월)
  • 중의원 의원 (5선, 오이타현 제1구)
  • 소속 정당: 일본민주당 → 자유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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