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우 선생 묘 및 신도비

이천우 선생 묘 및 신도비는 경기도 여주시 흥천면 계신리에 위치한 고려말 조선초 문신 이천우(李天祐, 1337~1401)의 묘와 신도비이다. 1972년 5월 4일 경기도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이천우(李天祐) 소개

이천우는 고려 말의 문신이자 조선의 개국공신이다. 공민왕 19년(1370)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냈으며, 우왕 14년(1388)에는 요동 정벌에 반대하여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도왔다. 조선 건국에 참여하여 개국공신 2등에 책록되고 문하찬성사, 여량부원군(驪良府院君)에 봉해졌다. 태종 1년(1401)에 사망하였으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그는 조선 초기 유학을 진흥하고 국가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묘(墓)의 구성

이천우 선생 묘는 부인 이씨와 합장된 쌍분(雙墳) 형태이며, 봉분 아래로는 둘레돌을 가지런히 둘렀다. 봉분 앞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이 놓여 있고, 그 좌우에는 문인석(文人石)과 무인석(武人石)이 각 1쌍씩 배치되어 있다. 묘역 주변에는 망주석(望柱石) 1쌍과 비석 등의 석물이 조화롭게 자리 잡고 있다. 이들 석물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넘어가는 시기의 묘제 양식과 석물 제작 기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신도비(神道碑)의 특징

묘의 동남쪽에 위치한 신도비는 조선 태조 5년(1396년)에 건립되었으며, 고려 말 조선 초를 대표하는 석비 중 하나이다. 비문은 당시 최고의 문장가이자 이천우의 사돈인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이 짓고, 글씨는 당대 명필인 권근(權近, 1352~1409)이 썼으며, 전액(篆額)은 권구(權勾)가 썼다. 비문에는 이천우의 생애와 공적, 가족 관계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역사와 사회상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비의 형태는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를 갖춘 전형적인 신도비 양식을 따르고 있다. 귀부의 조각은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있으며, 이수의 용 조각 또한 역동적인 조선 초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역사적·문화적 의의

이천우 선생 묘 및 신도비는 조선 초기 개국공신 묘역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며, 당시의 사회상과 석물 조성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신도비는 조선 개국 초기의 대표적인 금석문으로, 당대 최고 수준의 문장과 서예가 결합된 예술적 가치가 높으며,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사료로서의 가치 또한 매우 크다. 이를 통해 조선 초기의 정치적 격변기와 새로운 왕조의 기틀을 다지는 과정에서 활약한 인물의 삶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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