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이스라엘 평화 조약(Egypt–Israel peace treaty)은 1979년 3월 26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체결한 평화 조약이다. 이스라엘의 총리 메나헴 베긴과 이집트의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가 서명하였으며, 미국의 대통령 지미 카터도 서명인으로 참여하였다. 조약은 서명과 동시에 발효되었으며, 유엔 조약 번호는 UNTS 17813이다.
이 조약은 1978년 9월 17일 이집트, 이스라엘, 미국이 조인한 캠프 데이비드 협정(Camp David Accords)에서 비롯되었다. 1978년 협정은 '중동에서 평화를 위하여'와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평화 조약의 체결을 위한' 두 개의 문서로 구성된 틀을 포함하고 있었다. 미국의 중재와 지미 카터 대통령의 중동 방문을 통해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양자 평화를 실현하는 데 합의하였다.
조약은 총 9개 조항, 3개의 표준계약서, 그리고 부속 합의서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전쟁 상태를 명시적으로 종료하고 완전하고 공식적인 평화를 수립한다. 둘째, 양국 간의 영구적 경계로서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사이의 국제적 경계선을 인정한다. 셋째, 이스라엘이 1967년 6일 전쟁에서 점령한 시나이반도 전체를 이집트에 단계적으로 반환한다. 넷째, 비무장지대를 설치하고 유엔군이 국경을 감시하도록 하며, 어느 쪽도 유엔군의 철수를 일방적으로 요청할 수 없다. 다섯째, 수에즈 운하, 티란 해협, 아카바만, 수에즈만을 통한 이스라엘의 자유 통행권을 확인한다. 여섯째, 완전한 외교 관계 수립, 경제적·문화적 관계 정상화, 경제적 보이콧 종료, 물자와 인적 교류의 자유로운 이동을 포함한 관계 정상화를 규정한다.
조약 체결 이후 아랍 세계는 사다트의 이스라엘과의 단독 강화에 반발하였다. 아랍 연맹은 본부를 카이로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고, 대부분의 회원국들은 이집트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여 약 10년간 이집트의 고립을 초래하였다. 이집트 내부에서도 이슬람 급진파를 포함한 반대 세력이 이스라엘과의 평화에 항의하였으며, 1981년 10월 6일 안와르 사다트는 암살되었다. 이스라엘 내에서도 시나이반도 내 정착촌 철수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조약은 환영받았다.
사다트의 후임인 호스니 무바라크는 조약을 유지하면서도 이집트의 아랍 세계 내 리더십을 회복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집트의 경계심으로 인해 양국 관계는 낮은 수준의 무역 교류와 제한적인 국경 방문객 등 '차가운 평화(cold peace)'로 특징지어졌다. 이 조약은 이후 수많은 지역적 위기를 견뎌냈으나, 진정한 의미의 우호적 관계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해결에 달려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