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제27왕조는 고대 이집트 말기왕조 시대의 두 번째 왕조로, 아케메네스 제국(페르시아 제국)이 이집트를 점령하여 통치했던 시기를 가리킨다. 이 시기는 '제1차 이집트 사트라피'(First Egyptian Satrapy)라고도 불리며, 기원전 525년부터 기원전 404년까지 약 121년간 지속되었다.
배경과 성립
기원전 525년, 아케메네스 제국의 왕 캄비세스 2세가 동부 나일 삼각주에서 벌어진 펠루시움 전투(Battle of Pelusium)에서 이집트 제26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였던 프삼티크 3세를 격파하고 이집트를 정복하였다. 캄비세스 2세는 이집트의 파라오로 즉위하여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이 파라오를 겸하는 통치 체제를 확립하였다. 이집트는 이후 키프로스 및 페니키아와 함께 아케메네스 제국의 여섯 번째 사트라피(행정 구역)로 편입되었다.
통치 구조
아케메네스 제국의 왕들은 파라오의 칭호를 겸하면서도, 실제 행정은 '사트라프'(총독)를 통해 수행하였다. 이 시기 이집트를 통치한 주요 사트라프로는 아리안데스(Aryandes), 페렌다테스(Pherendates), 아케메네스(Achaemenes), 아르사메스(Arsames) 등이 있었다. 이 중 아르사메스는 가장 오랫동안 사트라프로 재임하였다.
주요 파라오
제27왕조의 파라오로는 캄비세스 2세(기원전 525~522년), 다리우스 1세(기원전 522~486년), 크세르크세스 1세(기원전 486~465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기원전 465~424년), 크세르크세스 2세, 소그디아누스, 다리우스 2세(기원전 423~404년)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아케메네스 왕조 출신의 페르시아 왕들로, 이집트의 파라오를 겸임한 인물들이다.
통치의 특징
다리우스 1세는 이집트 내정에 비교적 적극적으로 관여하여 이집트의 법률을 정비하고, 수에즈 지역에 운하 공사를 완공하여 비터호수에서 홍해로 통하는 항로를 개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이집트의 신전을 지원하여 종교적 관용을 보여주었다. 반면 크세르크세스 1세는 이집트의 특권적 지위를 폐지하고 조공 요구를 강화하였으며, 조로아스터교의 신 아후라 마즈다를 강조하면서 전통적인 이집트 신 숭배를 소홀히 하였다.
반란과 종말
이 시기에는 여러 차례의 반란이 발생하였다. 기원전 522~520년경에는 페투바스티스 3세가 반란을 일으켰고, 기원전 486년 크세르크세스 1세 즉위 직후에는 프삼티크 4세로 추정되는 인물이 반란을 주도하였다. 가장 큰 반란은 기원전 460년경 리비아 출신의 이나로스 2세가 아테네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것으로, 그는 사트라프 아케메네스를 죽이고 멤피스를 장악했으나 결국 페르시아 군대에 패배하였다.
다리우스 2세 치세 말기인 기원전 411년경부터 아뮈르타이오스(Amyrtaeus)가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하여, 기원전 405년 크레타 용병의 도움으로 페르시아 군대를 멤피스에서 몰아내고, 기원전 404년에 스스로 파라오를 선언함으로써 제27왕조는 종결되었다. 이후 이집트는 제28왕조, 제29왕조, 제30왕조 등 토착 왕조들이 약 60년간 독립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343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가 이집트를 다시 정복하면서 제31왕조(제2차 페르시아 점령기)가 성립하였다.
의의
제27왕조는 이집트 역사에서 처음으로 이집트가 외국 제국의 단순한 지방(사트라피)으로 전락한 시기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힉소스나 아시리아의 경우와 달리, 이 시기 이집트는 독립된 왕조를 유지하지 못하고 페르시아 제국의 행정 구역으로 편입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다만 헤로도토스, 크테시아스, 투키디데스, 디오도로스 등의 고대 사료를 통해 이 시기의 역사가 부분적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현대 학계에서도 아케메네스 시기 이집트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