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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조

이지조(李之藻, 1565년~1630년)는 중국 명나라 말기의 학자이자 천주교 신자이다. 출생·사망 연대는 자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는데, 위키백과 등 일부 자료에서는 1571년~1630년으로, 한국가톨릭대사전 등 다른 자료에서는 1565년~1630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생애와 관직

이지조는 절강성(浙江省) 인화(仁和, 현재의 항주) 출신이다. 자(字)는 진지(振之) 또는 아존(我存)이며, 호는 양암(凉庵) 또는 양암거사(凉庵居士) 등이다. 1598년(만력 26년) 진사(進士)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남경 공부원외랑(南京工部員外郞), 공부랑중(工部郞中)을 거쳐 1613년 남경 태복시소경(南京太僕寺少卿)에 이르렀다. 이후 광록사소경(光祿寺少卿) 등을 역임하였다.

마테오 리치와의 교류 및 입교

이지조는 1601년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를 만나 과학 기술 활동을 함께 시작하였다. 1602년에는 리치가 제작한 세계 지도인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를 6폭 병풍으로 중각(重刻)하며 발문을 지었다. 1604년부터는 북경에서 리치에게 서양의 여러 학술을 배우고 익혔으며, 리치의 조력자로서 다수의 한역(漢譯) 서학서(西學書)의 발문, 해제, 번역, 저술을 맡았다.

1610년 2월, 리치의 권유로 세례를 받고 로마 가톨릭교인이 되었다. 세례명은 레오(Leo)이다. 이는 당시 선교사들의 기록에서 "레옹 박사(Doctor Leon)"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주요 활동과 저술

이지조는 서광계(徐光啓), 양정균(楊廷筠)과 함께 중국 천주교의 삼대 기둥으로 불린다. 그는 천문, 지리, 군사, 수리(水利), 음악, 수학, 철학, 종교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졌으며, 예수회 선교사에 의해 전래된 서양 학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주요 편찬·번역 저술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천학초함》(天學初函) 52권: 1629년에 편찬한 학술 총서로, 당시 예수회 선교사와 봉교 사대부들의 주요 저술과 번역서를 종교서(이편)와 과학서(기편)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 《동문산지》(同文算指): 1614년에 출간된 클라비우스(C. Clavius)의 실용 산술 소개서 번역본 11권.
  • 《환유전》(寰有銓) 6권: 1628년 출간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서 번역.
  • 《명리탐》(名理探) 10권: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서적으로, 그의 사후 1631년에 출간되었다.
  • 《혼개통헌도설》(渾蓋通憲圖說) 2권: 1607년 간행된 천구(天球)의 평사(平射) 도법에 관한 논문.
  • 《반궁예악소》(泮宮禮樂疏) 10권: 공자의 제례 역사를 제기(祭器) 도판과 함께 서술한 저술.

이 중 《천학초함》과 《혼개통헌도설》, 《반궁예악소》 등은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수록되었다.

남경교난과 후기 활동

1616년 중국 최초의 공식적인 천주교 박해인 남경교난(南京敎難)이 발발하자, 이지조는 공직에서 물러나 고향에서 양정균과 함께 교회와 선교사, 교인들을 보호하는 데 힘썼다. 그 결과 당시 항주는 교난의 피해가 가장 적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19년에는 마카오에 가서 서양 대포 4문과 총을 구입하였고, 1621년에는 마카오의 포르투갈 병사를 초치하고 자력으로 총포를 제조하는 등 북경 방어에 진력하였다.

1629년, 역법 개정을 목적으로 북경에 역국(曆局)이 개설되자 이지조는 통고바르디, 테렌츠 등과 함께 천문 측정과 서양 역법 관련서 번역 등에 참여하였다. 이 작업의 성과는 《숭정역서》(崇禎曆書) 136권으로 집대성되었으나, 이지조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던 1630년 11월 1일 병환으로 사망하였다.

평가

이지조는 명말의 봉교(奉敎) 사대부로서 서양의 종교와 학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중국에 천주교가 뿌리내리게 하는 초석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된다. 동시에 서양 문물로써 당시 낙후되었던 중국 과학의 일부를 보완하고자 한 실학자로, 오늘날까지 동양 천주교회사와 동서 교섭사 연구에 중요한 인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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