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응(李鍾應, 1853년 11월 7일 ~ 1920년)은 조선 말기 및 대한제국의 관료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덕흥대원군의 11대손이자 밀산군 이찬의 8대손이다. 아버지는 가선대부 내장원경을 지낸 이명식(李明植)이다.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사헌부 감찰을 거쳐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1902년(광무 6년), 영국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특명대사 이재각(李載覺)이 이끄는 사절단의 수행원으로 선발되었다. 당시 사절단은 4월 6일 서울을 출발하여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 캐나다 밴쿠버, 대륙횡단 철도로 퀘벡을 지나 대서양을 횡단, 6월 5일 영국 리버풀에 도착하였다. 6월 26일 대관식에 참석한 후 프랑스, 이탈리아, 수에즈 운하, 홍해, 콜롬보, 싱가포르, 홍콩, 상하이, 나가사키 등을 경유하여 8월 20일 인천으로 귀국하였다. 총 136일간의 여정이었다.
이종응은 이 사행을 바탕으로 순한문 기행문 《서사록(西槎錄)》을 저술하였으며, 후손들이 읽기 쉽도록 한글 가사체로 요약한 《서유견문록(西遊見聞錄)》도 함께 남겼다. 《서사록》은 매일 일기 형식으로 작성되었으며, 지명과 인명은 한글로 기록하고 양력 일자와 음력을 함께 표기하였다. 당시 서양의 과학 기술과 문물을 목격한 생생한 기록으로, 한국의 근대 외교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서유견문록》은 20세기 초 외교 사절단이 남긴 최초의 한글 기행가사로서 가사문학 연구에도 가치 있는 문헌이다.
사망년도에 대해서는 1920년 설과 1922년 설이 함께 존재한다. 묘는 경기도 화성군 장안면 금의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