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작(李廷綽, 1678~1758)은 조선 후기 숙종·경종·영조 연간에 활동한 문신이자 문장가이다. 일부 자료에서는 한자 표기가 이정작(李庭綽)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경유(敬裕 또는 景裕), 호는 회헌(晦軒)이다. 증조부는 이제가(李際可)이고, 아버지는 이만봉(李萬封), 어머니는 조익구(趙益九)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재지(才智)가 뛰어나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1714년(숙종 40)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대교(待敎)에 임명되었고, 이후 수찬과 전적을 역임하였다. 1727년(영조 3) 중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통정대부의 품계에 올랐으며, 병조참의와 예조참의를 지낸 뒤 1732년에 진주목사가 되었다. 지방 관원으로 재임하는 동안 군정·전정·환곡의 삼정을 단속하여 아전들의 농간을 없애고 부세를 경감하여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1752년에 도승지를 지내고 이어서 이조·형조·공조 등의 참판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퇴임한 뒤에는 후학 교육에 힘썼던 것으로 전해진다.
저서로는 '옥린몽(玉麟夢)' 15권이 있다. 〈옥린몽〉은 국문으로 창작된 회장소설(回章小說)로, 중국 송나라를 배경으로 범경문과 그의 두 아내인 유씨와 여씨 사이의 갈등을 다룬 쟁총형 가정소설이다. 문장은 한문으로 되어 있으며, 〈옥루몽〉과 비견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및 위키백과 등에 별도 항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정작에 대한 주요 참고 자료로는 《영조실록》, 《증보문헌비고》, 《국조방목》, 《조선인물호보》 등이 있다. 다만, 위키백과에서 언급된 한자 '李廷綽'과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등에서 사용된 '李庭綽' 간의 한자 표기 차이가 있어 세부 표기의 정확한 규정에 대해서는 일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