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로(李正魯)는 한국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인물명으로,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최소 두 명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 이름은 공신력 있는 백과사전 및 학술 자료에 독립적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아래는 이에 해당하는 주요 인물들에 대한 객관적 기술이다.
1. 조선 말기 관료 출신의 조선귀족 이정로 (1838~1923)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대재(大哉), 호는 사계(沙溪)이다. 1838년 음력 12월 2일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으며, 부친은 증 의정부 참정 이근오(李根五)이다.
1858년(철종 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가주서, 초계문신, 용강현령, 홍문관 부교리, 사간원 정언, 홍문관 응교 등 관직을 역임했다. 1863년 『철종실록』 낭청에 임명되었고, 이후 성균관 대사성, 각조 참의, 경주부윤, 충주목사, 한성부 좌윤, 병조 참판 등을 거쳤다. 1882년 이조참의, 우승지, 이조참판을 지냈고, 1891년 도승지, 1892년 공조판서로 입각하여 예조판서, 좌참찬, 이조판서 등의 고위 관직을 역임하였다.
을미사변(1895) 당시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관련하여 폐비를 주장한 친일 인물들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린 바 있어 본래 수구파(守舊派) 성향의 인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된 직후인 1910년 10월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男爵) 작위를 수여받았다. 그의 작위는 아들 이능세(李能世)에게 세습되었다.
1923년 5월 1일 사망하여 가평에 묻혔다. 사후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 그리고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2008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그가 소유한 토지에 대해 국가귀속 결정을 내렸다.
2. 장로교 목사 이정로 (1884~1962)
충청남도 홍성 출신의 장로교 목사이다. 1911년 보성전문학교 법률과를 졸업하였고, 1922년 일본 동경신학교를 졸업한 뒤 귀국하여 전도사로 목회 활동을 시작했으며, 1923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28년 피어선성경학원 원감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문제로 평양신학교가 무기 휴교 상태에 빠지고 선교사들이 물러가게 되자, 선교사의 통제와 간섭에서 벗어나 한국인 주도로 운영되는 신학교 설립 운동이 추진되었고, 이정로는 그 과정에서 조선신학교(朝鮮神學校)의 창립 요원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교수로 활동하였다.
이상과 같이 '이정로'는 조선 말기~일제강점기 관료였던 인물과 장로교 목사였던 인물이라는 서로 다른 두 인물의 이름으로, 각각 한국근현대사 관련 백과사전 자료에 근거가 명확히 기록되어 있는 실존 인물명이다. 다만 '이정로'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위 두 명 이외에도 더 존재할 가능성이 있으며, 개별 인물에 대한 구체적 세부 사항은 각각의 출처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