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슬라프 2세(Izjaslav II, 러시아어: Изяслав Мстиславич, 우크라이나어: Ізяслав Мстиславич, 1096년경~1154년 11월 13일)는 키예프 대공국의 군주이다. 세례명은 판텔레이몬(Пантелеимон)이다.
생애
이자슬라프 2세는 키예프 대공 므스티슬라프 1세(므스티슬라프 대제)와 그의 첫 번째 아내인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잉에스도테르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이며, 블라디미르 모노마흐의 손자이다. 류리크 왕조 출신이다.
1127년 연대기에 처음 등장하며, 당시 그의 숙부 야로폴크에 의해 쿠르스크 공작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폴로츠크 공작(1129~1132), 투라우(투로프) 공작(1132~1134), 블라디미르볼린스키(볼히니아) 공작(1135~1141, 1146~1151), 페레야슬라우(페레야슬라블) 공작(1141~1146)을 역임하였다.
1146년 키예프 대공 프세볼로트 2세가 사망하자 그의 형 이고리 2세가 대공위를 계승하였으나, 이자슬라프 2세는 키예프 시민들의 초청을 받아 이고리를 축출하고 키예프 대공에 즉위하였다. 이후 그의 숙부인 유리 돌고루키(유리 블라디미로비치)와 키예프 대공위를 두고 장기간의 내전을 벌였다. 유리 돌고루키가 두 차례(1149년, 1150년) 키예프를 점령하였으나, 이자슬라프 2세는 이를 다시 탈환하였다. 1151년 루타 강 전투에서 유리 돌고루키를 결정적으로 격파한 후, 자신의 또 다른 숙부인 뱌체슬라프 블라디미로비치와 공동 통치 체제를 구축하여 사망할 때까지 키예프를 통치하였다.
업적 및 평가
이자슬라프 2세는 키예프 연대기(이파티예프 연대기)에서 '차르(царь)'로 칭해진 최초의 고대 루스 공작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뛰어난 군사 전략가이자 외교관으로 평가받으며,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 중앙유럽 국가들과 동맹 관계를 구축하여 세력 확장에 힘썼다.
1147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승인 없이 주교 회의를 소집하여 클리멘트 스몰랴티치를 키예프 대주교로 선출하였는데, 이는 당시 교회법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키예프 대공국은 내부 분쟁과 외부 세력의 간섭 속에서도 비교적 안정된 통치를 유지하였다.
연대기는 그가 남긴 말로 "장소가 머리로 가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장소로 간다(Не идёт место к голове, а голова к месту)"는 구절을 전하는데, 이는 가장 적합한 사람이 스스로 더 나은 지위를 찾아야 한다는 그의 신념을 나타낸다.
가족
첫 번째 부인(1151년 사망)과의 사이에서 아들 므스티슬라프 2세(훗날 키예프 대공), 야로슬라프 2세(훗날 키예프 대공), 야로폴크, 딸 옵도키야(폴란드 대공 미에슈코 3세와 혼인) 등을 두었다. 1154년 두 번째로 조지아의 왕녀(또는 아바스카야 공주)와 혼인하였으나 자녀는 없었다.
사망
1154년 11월 13일 키예프에서 사망하였으며, 키예프의 성 페오도르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그의 사망 소식은 키예프 시민들과 흑두건(베렌데이족과 토르크족) 사이에서 큰 애도를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