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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성 (고려)

이자성(李子晟, ? ~ 1251년)은 고려 후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우봉(牛峰)이며, 병부상서를 지낸 이공정(李公正, 李公靖)의 아들이다. 성품이 강직하고 용력(勇力)이 있었으며 특히 활을 잘 쏘았다고 전한다. 여러 차례 종군하여 공을 세우며 승진하여 상장군(上將軍)에 올랐다.

1231년(고종 18) 몽골의 제1차 침략(여몽전쟁)이 시작되자 당시 상장군으로서 고려의 방어군을 거느리고 출정하였다. 황해도 황주 부근의 동선역(洞仙驛)에서 몽골 원수 살리타(撒禮塔)가 이끄는 군대의 선봉대 기습을 받아 이를 격퇴하였으나, 화살에 맞아 부상을 당하였다. 이후에도 전열을 가다듬어 몽골군을 물리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232년 고려 조정이 강화도로 천도한 직후, 어사대(御史臺)의 조례(皁隷)였던 이통(李通)이 경기의 초적(草賊)과 개경 성중의 노예를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후군진주(後軍陣主)로서 조염경(趙廉卿)·최근(崔瑾) 등과 함께 3군을 거느리고 출정하여 난을 평정하였다. 같은 해 충주에서 노군(奴軍)의 난이 재발하자 다시 3군을 거느리고 출동하여 반란의 괴수인 승려 우본(牛本)을 처단하고 난을 진압하였다.

1233년에는 중군병마사가 되어 적괴(賊魁) 거복(居卜)·왕심(往心)을 처단하여 용문창(龍門倉)의 난을 평정하였다. 같은 해 6월에는 동경(東京,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최산(崔山)·이유(李儒) 등을 영천에서 주멸하고 개선하는 등, 대몽항쟁기 초기의 민란을 진압하는 데 자주 출정하여 공을 세웠다. 다만 시기하는 자들의 모함을 두려워하여 병을 핑계로 출입을 끊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벼슬은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의열(義烈)이다. 그의 생애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등의 사료를 통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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