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수(李仁壽, 생몰년 미상)는 조선 태조(이성계) 시기에 활동한 인물로, 요리사(숙수) 출신의 관료이다. 본래 음식을 만드는 일에 능숙하였으며, 태조의 총애를 받아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 종2품)에까지 올랐다. 1392년(태조 1) 문하부 낭사에서 그가 재주와 덕망이 부족하다며 파직을 요청하였으나, 태조는 그가 병권과 정권을 잡지 못하도록 하고 사옹(司饔, 궁중 음식을 담당하는 관직)을 주관하게 한 점을 들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해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봉되었는데, 이는 그가 태조 이성계를 오래도록 따랐던 점이 인정된 결과였다. 1398년(태조 7)에는 도당(都堂) 옆방에서 바둑을 두었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태종 이방원과 함께 사리전(舍利殿)을 준공하는 데 참여한 기록이 《태종실록》에 전한다.
한편, 동명이인으로 이인수(李仁秀, 1737~1813)가 있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성빈(聖賓)이며, 충무공 이순신의 7대손이다. 할아버지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언상(李彦祥)이고, 아버지는 금위대장·총융사 등을 지낸 이한응(李漢膺)이다. 1777년(정조 1) 백령첨사(白翎僉使)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관직 생활에 들어섰으며, 강계부사·회령부사 등 지방관을 거쳐 1800년(정조 24)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랐다. 통제사 재임 중에는 제포 등 5개 진의 환곡과 군정 폐단을 조사하여 백성들의 군역 부담을 고르게 정비할 것을 보고하였다. 1803년(순조 3) 총융사에 올랐고, 좌우포도대장을 거쳐 1807년(순조 7) 금위대장에 임명되었으나 군율을 엄격히 하지 못한 책임으로 삭직되었다. 그러나 이순신의 후손임이 알려져 왕의 배려로 다시 총융사·금위대장에 임명되었다. 1812년 훈련대장에 제수되었으나 노병(老病)으로 체직을 허락받았고, 이듬해인 1813년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 외에도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이인수(李仁洙)가 별도로 존재하나, 이는 조선 시대 인물이 아닌 근대 인물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