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문(李寅文, 1745년~1821년 또는 1824년)은 조선 후기의 화가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자는 문욱(文郁), 호는 유춘(有春)·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자연옹(紫煙翁)이다.
도화서(圖畫署)의 화원으로 첨절제사(僉節制使) 벼슬을 지냈다. 정조의 규장각 초대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으로 선발되었으며, 38년 동안 차비대령화원을 지내면서 1795년, 1796년, 1799년 세 차례 연행(燕行)을 다녀왔다. 동갑 화원이었던 김홍도(金弘道)와 가깝게 지냈으며, 강세황(姜世晃)·남공철(南公轍)·박제가(朴齊家)·신위(申緯) 등의 문인화가들과도 교유하였다.
산수화, 포도, 영모(翎毛), 도석 인물(道釋人物) 등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다. 당시 화단에 유행하던 진경산수(眞景山水)나 풍속화보다는 전통적인 소재를 많이 다루었으며, 특히 송림(松林)을 즐겨 그려 이 방면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된다. 남종화(南宗畵)와 북종화(北宗畵) 각체의 화법을 혼합하여 특유의 화풍을 이루었으며, 이는 심사정(沈師正)·최북(崔北)·김홍도 등의 회화 세계와 함께 당시 화단의 한 조류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60세 이전의 그림들은 비교적 섬세한 필치와 선묘적 경향, 깔끔하고 청정한 분위기를 보였으나, 60세 이후에는 강하고 대담한 발묵법(潑墨法) 위주의 표현적인 붓질로 보다 세련되고 격식을 초탈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대표작으로 조선 후기 최대의 거작으로 평가되는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제2029호)를 비롯하여, 「송하담소도(松下談笑圖)」(1805년), 「송계한담도(松溪閑談圖)」, 「대부벽준산수도(大斧劈皴山水圖)」(1816년), 「누각아집도(樓閣雅集圖)」(1820년),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국립광주박물관 소장), 「단발령망금강도(斷髮嶺望金剛圖)」(개인 소장) 등이 있다. 「강산무진도」는 총 길이 약 8.5m에 달하는 긴 두루마리 그림으로, 강산만리의 대자연과 이를 배경으로 한 백성들의 생활상을 세련된 필법과 뛰어난 화면 구성력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기량이나 격조 면에서 김홍도와 쌍벽을 이루었던 대표적인 화원으로, 조선 후기 회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