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이용휴는 1740년(영조 16년)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용인이씨(龍仁李氏)이다. 1762년(영조 38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774년(영조 50년)에는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다. 주로 내외직을 두루 거쳤으며, 예조정랑, 사헌부 지평, 세자시강원 문학 등을 역임했다.
강직한 성품으로 인해 간신들을 비판하고 불의에 저항하다 파직되거나 유배를 가기도 했다. 특히 1785년(정조 9년)에는 당시 권세가 김이소(金履素)를 탄핵했다가 삭직당하고 귀양을 가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처럼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태도로 인해 순탄치 않은 관직 생활을 보냈다. 말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하며 시와 학문에 전념했으며, 1798년(정조 22년)에 사망했다.
사상 및 학풍
이용휴는 당시 주류였던 성리학적 사변보다는 현실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졌다. 현실 참여적인 실학적 경향을 보였으나, 특정 학파에 속하기보다는 독자적인 사유를 발전시켰다.
특히 시에서 이러한 사상적 특성이 잘 드러난다. 그는 난초를 통해 자신의 고결한 품성과 세상에 대한 불만, 속세와의 거리감을 표현했다. 그의 난초시는 단순한 사군자 문학을 넘어 사회 비판적이고 자아 성찰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문학적으로는 당대의 문풍을 따르기보다는 고문(古文)을 존중하고 독창적인 문체를 추구했다. 박지원(朴趾源), 홍대용(洪大容) 등 당시 북학파 실학자들과 교류하며 문학적, 학문적 영향을 주고받았다.
저서
- 『광대집(廣大集)』: 이용휴의 시와 산문을 엮은 문집이다. 특히 난초를 소재로 한 수많은 시들이 수록되어 있어 그의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평가
이용휴는 조선 후기 혼란한 시기에 불의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지조를 지켰던 강직한 선비이자,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시는 조선 후기 문학사의 흐름 속에서 개성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현대에도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같이 보기
- 박지원
- 홍대용
- 정조
참고 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용휴
- 조선왕조실록
- 한국고전번역원: 광대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