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겸
이용겸(李容謙, 李用謙)은 한국 역사에서 동명이인(同名異人)으로 확인되는 인물들의 이름이다. 한자 표기와 활동 시기에 따라 크게 세 인물이 공신력 있는 사료를 통해 확인된다.
이용겸(李容謙, 1916~1960) — 독립운동가
함경남도 신흥(新興)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1943년 11월 일제가 임시육군특별지원병제도를 실시하자, 그해 12월 경성특설지원병훈련소(京城特設志願兵訓鍊所)에 입소하여 1주일간 훈련을 받았다. 훈련 후 서부(西部) 육군 제18부대에 입영명령을 받았으나 이에 불응하였다. 1944년 조선의 광복을 목적으로 한 반일청년단체 구국청년회(救國靑年會)를 조직하여 회장을 맡고 함경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전국에 반일 격문을 살포하고 동지를 규합하던 중, 1944년 3월 5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같은 해 5월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광복을 맞았다.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이용겸(李容謙) — 축구 선수
일제강점기 시절의 축구 선수로, 경성 축구단(京城蹴球團)의 창단 멤버였다. 당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축구부의 부장(部長) 직을 맡으며 해외 원정 대회에 참가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경성 축구단의 공식 창단 이전에도 경성 대표로 경평대항축구전(京平對抗蹴球戰)에 참가한 바 있으며, 창단 초기에는 주장을 역임하였다.
이용겸(李用謙, 1773~?) — 조선 시대 진사
조선 정조(正祖) 대의 인물로, 자(字)는 대섭(大涉)이며 본관은 문의(文義), 거주지는 개성(開城)이었다. 1795년(정조 19) 을묘(乙卯)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시험에 3등 68위(전체 108명 중 98위)로 합격하였다. 당시 23세였으며, 합격 당시 전력(前歷)은 유학(幼學)이었다. 부친은 진사 이명오(李命五)이다. 관련 기록은 『을묘식년사마방목(乙卯式年司馬榜目)』(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에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조선검찰요보(朝鮮檢察要報)』 3·5, 고등법원검사국, 1944.
- 『을묘식년사마방목(乙卯式年司馬榜目)』,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K2-3553).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