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키 노부타카(岩城宣隆, 1584년 ~ 1672년 10월 17일)는 일본 에도 시대 초기의 다이묘로, 데와국(出羽国) 가메다번(亀田藩)의 2대 번주이다. 사타케 요시시게(佐竹義重)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릴 적 이름은 히코타로(彦太郎)이다. 관위는 종5위하, 다지마노카미(但馬守)이다.
노부타카는 처음에 다가야 시게츠네(多賀谷重経)의 양자가 되어 다가야 노부이에(多賀谷宣家)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다가야 가문이 개역(改易)되자 친가인 사타케 가문으로 복귀하였다. 1602년 장남인 사타케 요시노부(佐竹義宣)가 데와로 전봉될 때 양부 시게츠네와 함께 이에 따랐다.
구보타번(久保田藩)의 중신이 된 노부타카는 처음에는 센보쿠 시라이와 성주(仙北白岩城主)를, 이후에는 야마모토 히야마 성주(山本檜山城主)를 역임하였다. 노부타카가 이와키 가문을 상속하면서 다가야 가문의 명적은 사타케 일문인 도무라 요시쿠니(戸村義国)의 차남 다가야 다카츠네(多賀谷隆経)가 계승하였다.
1628년, 가메다번주였던 조카 이와키 요시타카(岩城吉隆, 후의 사타케 요시타카)가 구보타번주인 사타케 요시노부의 양자가 되어 번주 자리를 비우게 되자, 노부타카가 그 뒤를 이어 가메다번의 번주가 되었다. 같은 해 9월 에도 막부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와 그 아들 이에미쓰에게 알현하였다. 1634년에 노부타카(宣隆)로 개명하였다.
1643년 야마가타번주 호시나 마사유키가 무쓰국 아이즈번으로 전봉될 때, 노부타카는 도자와 마사모리, 로쿠고 마사카쓰와 함께 야마가타 성번(城番)을 맡았다. 검지(検地)를 실시하는 등 번정의 기초를 다졌으며, 1656년 7월 가독을 장남 시게타카(重隆)에게 양도하고 은거하였다. 1672년 사망하였으며, 향년 89세였다.
정실은 다가야 시게츠네의 딸인 가이다이인(珪台院)이며, 계실은 사나다 노부시게(真田信繁)의 다섯째 딸인 겐세이인(顕性院)이다. 자녀로는 장남 시게타카, 차남 다카이에(隆家), 딸이 있다. 묘소는 아키타현 유리혼조시 이와키 아카히라의 류몬지(竜門寺)에 있다.
한편, 노부타카가 조카로부터 번주 자리를 이어받은 것은 당시 관례상 드문 '조카에서 숙부로의 승계'였기 때문에, 일부 사서에서는 그를 정식 번주가 아닌 번대(番代, 대행)로 취급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