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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쿠라 사절단

이와쿠라 사절단(일본어: 岩倉使節団, 영어: Iwakura Mission)은 1871년 12월 23일(메이지 4년)부터 1873년 9월 13일(메이지 6년)까지 일본 메이지 정부가 미국과 유럽 각국에 파견한 대규모 사절단이다. 특명전권대사였던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의 이름을 따서 이와쿠라 사절단으로 불린다.

파견 배경 및 목적

메이지 유신 직후인 1871년, 일본은 막부 시절 체결된 불평등 조약의 개정과 서양 문물의 조사·도입을 위해 사절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사절단의 주요 목적은 세 가지였다. 첫째, 막부 시절 조약을 체결한各国에 새 정부의 국서를 제정하는 일, 둘째, 불평등 조약 개정을 위한 예비 교섭, 셋째, 미국과 유럽 각국의 근대적 정치·경제·군사·교육·산업·사회 제도와 문물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 및 연구였다. 네덜란드계 미국인 선교사 휘도 베르덱(Guido Verbeck)이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서유럽에 파견한 대사절단을 모델로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성

사절단은 특명전권대사 이와쿠라 도모미를 정사로 하여, 부사(副使)로 기도 다카요시(木戸孝允),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야마구치 마스카(山口尚芳) 등 메이지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포함되었다. 사절단원은 약 46명, 수행원 약 18명, 유학생 약 43명 등 총 100여 명에 달했다. 사절단의 평균 연령은 약 30세로 젊은 층이 주축을 이루었다. 사절단의 공식 기록을 담당한 구메 구니다케(久米邦武)는 후에 방문 보고서인 《특명전권대사 미구회람실기》(特命全権大使米欧回覧実記)를 편찬하였다.

방문 국가 및 경로

1871년 12월 23일 요코하마 항을 출발한 사절단은 태평양을 건너 1872년 1월 15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이후 미국을 횡단하여 워싱턴 D.C.를 방문하였고, 약 8개월간 미국에 체류하였다. 이후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향하여 영국(약 4개월), 프랑스(약 2개월),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약 3주), 러시아(약 2주),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빈 만국박람회 시찰), 스위스 등 총 12개국을 방문하였다. 귀국 길에는 지중해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여 실론(스리랑카), 싱가포르, 사이공(호찌민), 홍콩, 상하이 등 아시아 지역에도 기항하였다. 1873년 9월 13일 요코하마에 귀환하였으며, 총 1년 10개월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성과 및 영향

조약 개정 교섭은 미국과 유럽 각국이 일본의 법제 정비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여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절단은 서양 각국의 근대적 제도와 산업 시설, 군사, 교육, 교통, 통신 등 다양한 분야를 직접 견학하고 조사함으로써 일본의 근대화에 필요한 청사진을 얻는 데 성공하였다. 귀국 후 사절단 주요 인사들은 당시 고조되던 정한론(征韓論)을 저지하고 내정 개혁과 부국강병(富国強兵)·식산흥업(殖産興業)에 주력하는 정책 방향을 결정하였다. 이는 이후 메이지 정부의 근대화 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사절단에 동행한 유학생들(가네코 겐타로, 쓰다 우메코, 나카에 조민 등)은 귀국 후 정치·경제·교육·문화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하며 일본의 문명 개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사절단의 공식 보고서인 《특명전권대사 미구회람실기》(전 100권, 1878년 간행)는 당시 서양 문명에 대한 일본의 이해와 관찰을 집대성한 중요한 역사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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