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억기(李億祺, 1561년 ~ 1597년)는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과 함께 수군을 이끌며 활약한 삼도수군통제사 휘하의 핵심 장수 중 한 명이다.
생애
- 초기 생애 및 관직 진출: 본관은 전주 이씨이며, 자는 경회(敬會), 호는 기봉(奇峯)이다. 1561년(명종 16년)에 태어났으며, 1583년(선조 16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다. 이후 여러 지역의 수령을 역임하며 경험을 쌓았다.
- 임진왜란과 활약: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라좌수영 소속의 여러 진영을 지휘하며 전라좌수사 이순신 휘하에서 활약했다. 그는 옥포 해전, 사천 해전, 당포 해전, 당항포 해전, 한산도 해전, 부산포 해전 등 주요 해전에 모두 참전하여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한산도 해전에서는 판옥선 수십 척을 이끌며 왜군을 격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용맹함과 지휘 능력은 이순신 장군에게 깊은 신뢰를 받았으며,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여러 차례 언급되어 그의 활약상이 기록되어 있다.
- 칠천량 해전과 최후: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이 발발한 후,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대신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원균 휘하에서 칠천량 해전에 참전했다. 이 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왜군의 기습과 원균의 오판으로 인해 궤멸적인 패배를 당했으며, 이억기는 전투 중 전사했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평가 및 추모
이억기는 임진왜란 초기 조선 수군의 연전연승에 크게 기여한 뛰어난 지휘관으로 평가받는다. 비록 비극적인 칠천량 해전에서 생을 마감했으나, 그의 충절과 용맹은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다. 사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고, 충정(忠貞)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또한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아산 현충사의 경내에 이순신의 다른 주요 장수들과 함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