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쓰쓰지노미야(五辻宮, いつつじのみや)는 일본의皇室(황실)에 존재했던 궁가(宮家) 중 하나로,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부터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에 걸쳐 존속한 역사적 실체이다. 한국어 위키백과의 '가마쿠라 시대' 분류에도 등재되어 있는 개념이다.
개요
이쓰쓰지노미야는 가마쿠라 시대의 제90대 천황인 가메야마 천황(亀山天皇)의 제5황자(第五皇子)인 모리요시 친왕(守良親王)을 초대로 하여 성립되었다. 궁호(宮号)는 초대 모리요시 친왕이 외조부인 후지와라노 사네히토(藤原実仁)로부터 상속받은 저택이 교토(京都)의 가미교(上京) 지방에 위치한 '이쓰쓰지(五辻)'에 있었던 데에서 유래하였다.
역사적 배경
이 궁가는 지메이인통(持明院統)과 다이카쿠지통(大覚寺統)의 황통 쟁탈전, 그리고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의 개입에 영향을 받은 복잡한 역사를 지닌다. 가마쿠라 막부의 개입으로 인해 초대 모리요시 친왕은 자신의 저택을 실자가 아닌 지메이인통 계열의 구메이 친왕(久明親王)의 아들(후의 후카쿠사노미야/深草宮)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이로 인해 같은 시기에 동명의 '이쓰쓰지노미야'가 두 계열(대가쿠지통 계열의 모리요시 친왕 혈통과 지메이인통 계열의 혈통)에 걸쳐 존재하게 되는 특이한 사례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에 존재했던 구니노미야(久邇宮) 외에는 유례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주요 사건
1333년, 롯파라 단다이(六波羅探題)의 군세를 추격하던 오미국(近江国)의 노부시(野伏)들이 '센테이다이고로(先帝第五宮)'를 옹립했다는 기록이 《태평기(太平記)》에 전해지는데, 이 '제5궁'은 모리요시 친왕(守良親王)으로 비정된다. 이후 모리요시 친왕의 아들인 소카쿠(宗覚)도 '이쓰쓰지노미야'로 불리며 2대를 이었고,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에 의해 규슈(九州)로 파견된 '이쓰쓰지노미야'라는 인물도 존재했으나 그 상세는 불명확하다.
쇠퇴
1367년경에는 구메이 친왕의 손자인 쇼에키(祥益)가 '이쓰쓰지 친왕가(五辻親王家)'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후 점차 쇠퇴하였다. 1432년에는 '이쓰쓰지 뉴도미야(五辻入道宮)'라는 인물이 고스코인(後崇光院)을 방문하여 규슈의 영지에 관한 중개를 요청했다는 기록이 《간몬 일기(看聞日記)》에 남아 있다.
결론
이쓰쓰지노미야는 일본 중세 황실사에서 가마쿠라 시대부터 남북조 시대까지 실제로 존재했던 궁가로서,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도 확인되는 역사적 개념이다. 다만 단독 문서로는 한국어권에서 널리 알려진 개념은 아니며, 주로 일본사 전공 서적이나 위키백과 분류 항목을 통해 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