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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스덴

이신스덴(以心崇伝, 1569년~1633년 2월 28일)은 일본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전기까지 활동한 임제종(臨済宗)의 승려이다. '이신(以心)'은 그의 자(字)이고 '스덴(崇伝)'은 그의 법명으로, 교토 난젠지(南禅寺) 곤치인(金地院)에 머물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곤치인 스덴(金地院崇伝)으로도 불린다. 속세의 성은 잇시키 씨(一色氏)이며, 무로마치 막부의 막신이었던 잇시키 히데카쓰(一色秀勝)의 둘째 아들로 교토에서 태어났다.

생애

무로마치 막부가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멸망하고 부친이 사망한 후, 관료로서의 출세를 포기하고 난젠지에서 출가하였다. 게이초 10년(1605년)에는 난젠지의 270세 주지가 되어 관사의 정점에 섰으며, 고요제이 천황으로부터 자의(紫衣)를 하사받았다. 게이초 13년(1608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초청을 받아 막부 정치에 참여하였고, 이후 외교 문서 기초, 주인장(朱印状) 사무, 종교 관련 법령 등을 담당하였다.

에도 막부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통치 아래 막부의 법률 입안과 외교, 종교 통제를 일선에서 맡았으며, 그 권세와 법복의 색깔로 인해 '흑의재상(黒衣宰相)'이라고도 불렸다. 간에이 3년(1626년)에는 고미즈노오 천황(後水尾天皇)의 스승이 되면서 '혼코 국사(本光国師)'라는 칭호를 받았다.

주요 업적

그가 기초한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는 막부의 노중(老中) 이하 여러 다이묘(大名)들 앞에서 스덴에 의해 포고되었다. 도쿠가와 이에미쓰(徳川家光)와 도쿠가와 다다나가(徳川忠長)의 휘(諱)는 스덴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게이초 18년(1613년)에는 크리스트교 금교(禁教)를 명하는 '바테렌 추방의 글(伴天連追放之文)'을 기초하였는데, 이는 이후 3백 년에 걸친 일본의 크리스트교 금교 정책을 결정지은 법령이었다. 또한 사원제법도(寺院諸法度), 금중병공가제법도(禁中並公家諸法度)의 제정에 관여하였고, 본사-말사 제도를 확립하고 단가사청제도(檀家寺請制度)를 통해 사찰을 행정기구로 활용하는 체계를 구축하였다. 이 단가제도는 현대 일본 불교의 단가제도(檀家制度)의 기원이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겐나 5년(1619년)에는 승려의 인사를 통괄하는 소로쿠(僧録)의 지위를 얻었으며, 이후 승록은 곤치인의 주지가 겸무하는 관례가 생겨나 '곤치소로쿠(金地僧録)'라 불리게 되었다.

오사카 전투 및 자의 사건

게이초 19년(1614년) 오사카 전투(大坂の陣)의 발단이 된 호코지 종명 사건(方広寺鐘銘事件)에 관여하였다. 간에이 4년(1627년)에는 금중병공가제법도를 기초하여 자의 사건(紫衣事件)이 발생하였고, 이 사건을 통해 천황도 막부의 법도 아래 있음을 천하에 알리게 되었다.

사망과 후일

간에이 10년(1633년) 1월 20일, 에도 곤치인에서 사망하였다. 향년 65세였다. 그의 사후 스덴 한 사람이 도맡아오던 권한들은 분산되어 지샤 관계 업무는 지샤부교(寺社奉行)가, 외교 관계 업무는 노중과 나가사키 부교(長崎奉行)가, 문교외교 관계는 하야시 가문이 각각 이어받게 되었다.

조선과의 관계

1617년 조선의 회답 겸 쇄환사(정사: 오윤겸, 부사: 박재)의 종사관이었던 이경직(李景稷)은 자신의 사행기록 《부상록》(扶桑錄)에 스덴을 먼발치에서 본 기록을 남겼다. 조선 사신단은 쇼군 히데타다가 조선의 광해군에게 보내는 서계(書契)의 형식을 둘러싸고 스덴과 외교적 논의를 벌였으며, 조선 사신이 스덴에게 잣, 미선, 붓, 먹, 인삼 등의 선물을 보냈다는 기록이 전한다. 1624년 조선의 회답 겸 쇄환사 부사였던 강홍중(姜弘重)은 《동사록》(東槎錄)에서 스덴을 "문서를 주관하는 중으로 장군에게 가장 신임을 받으며, 별호는 이신(以心)이라 한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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