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휴(李承休, 1224년~1300년)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가리(加利) 이씨이며, 자는 휴휴(休休), 자호는 동안거사(動安居士)이다. 경산부 가리현(현재의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났다.
생애
이승휴는 1252년(고종 39) 4월 과거에 급제하였다. 이듬해 홀어머니를 뵈러 삼척현으로 갔다가 몽골의 침략으로 길이 막혀 두타산(頭陀山) 구동(龜洞)에서 농사를 지으며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1264년(원종 5) 이장용(李藏用)과 유경(柳璥)의 천거를 받아 경흥부서기(慶興府書記)에 보임되었고, 이후 도병마녹사(都兵馬錄事)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273년에는 원나라에 서장관(書狀官)으로 파견되었으며, 충렬왕(忠烈王) 때에는 합문지후(閤門祗候), 감찰어사(監察御史), 우정언(右正言), 우사간(右司諫) 등을 지냈다. 1280년(충렬왕 6) 감찰사의 관원들과 함께 국왕의 실정과 측근 인물들의 전횡을 10개조로 간언하다가 파직되었다.
파직 후 삼척현 구동으로 돌아가 용안당(容安堂)을 짓고 은거하며 저술 활동에 전념하였다. 1298년 충선왕(忠宣王)이 즉위하자 특별히 기용되어 사림시독학사 좌간의대부 사관수찬관 지제고(詞林侍讀學士左諫議大夫史館修撰官知制誥)에 임명되었으나, 고령을 이유로 사직을 요청하여 밀직부사 감찰대부(密直副使監察大夫)로 치사(致仕)하였다. 1300년(충렬왕 26) 10월 사망하였다.
학문 세계와 주요 저술
이승휴의 가장 대표적인 저서는 『제왕운기(帝王韻紀)』이다. 이 책은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칠언시와 오언시 형식으로 엮은 서사시로, 1287년(충렬왕 13)에 완성되었다.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권은 중국 역사, 하권은 한국 역사를 다루었다. 특히 하권에서는 단군(檀君)에서 고려 충렬왕까지의 역사를 시로 서술하였는데, 단군을 우리 역사의 시원으로 명확히 기록한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이는 당시 원나라의 정치적 간섭 속에서 민족문화의 우월성과 역사적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 자주적 역사서로 평가된다.
또 다른 저술로는 불교 관련 기록을 정리한 『내전록(內典錄)』이 있으며, 아들 이연종(李衍宗)이 편집한 문집 『동안거사집(動安居士集)』이 전해진다. 또한 이승휴가 원나라 사행(使行) 중에 지은 시문을 엮은 『빈왕록(賓王錄)』은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사행문학(使行文學)으로 평가된다.
유적
삼척 두타산 일대에는 이승휴가 은거하며 저술 활동을 한 용안당(容安堂) 터를 비롯한 유적이 남아 있으며, 이는 국가 사적(史蹟)으로 지정되어 있다. 용안당은 후에 이승휴가 사찰로 희사하여 간장사(看藏寺)라 불렸으며, 이후 천은사(天恩寺)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