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파키스탄은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한 적이 없는 국가 간 관계이다. 이스라엘은 1948년 독립을 선언하였고, 파키스탄은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두 국가 모두 영국의 식민 지배 이후 독립하였고 냉전 시기 친미 성향을 보였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파키스탄은 팔레스타인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이스라엘과의 국교 수립을 거부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
파키스탄의 건국 이념은 이슬람 정체성에 기반하고 있으며, 건국 초기부터 팔레스타인 문제를 중요한 외교 의제로 삼았다. 파키스탄의 건국자인 무함마드 알리 진나는 1945년 연설에서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장악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1947년 유엔 팔레스타인 분할안 표결에서 파키스탄은 반대표를 던졌으며,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 선언 이후, 당시 이스라엘 총리였던 다비드 벤구리온은 진나에게 전보를 보내 외교 관계 수립을 시도했으나 특별한 응답을 받지 못했다. 1952년 파키스탄 외무장관 자파룰라 칸은 이스라엘에 대한 강경 노선을 채택하고 아랍-이스라엘 분쟁에서 아랍 측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천명하였다.
군사적 대립
파키스탄 공군은 1967년 6일 전쟁과 1973년 욤키푸르 전쟁에서 조종사들을 파견하여 이스라엘군과 교전하였다. 파키스탄 조종사 사이풀 아잠은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 전투기 최소 4대를 격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2년 레바논 전쟁 당시에는 파키스탄인 자원병들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측에서 활동하였고, 베이루트 공방전 당시 50명이 포로로 잡혔다.
정보 협력
공식적인 적대 관계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정보 기관 차원에서 협력한 사례가 존재한다. 1980년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시기, 파키스탄 정보부(ISI)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영국 MI6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에서 반소련 작전(Operation Cyclone)을 공동으로 수행하였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으로부터 노획한 소련제 무기를 아프간 무자헤딘에게 공급하였고, 파키스탄 군대는 이스라엘의 군수물자 지원을 받았다.
2010년 파키스탄 신문 《던(Dawn)》은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된 정보를 인용하여, 파키스탄 ISI가 2008년 인도 뭄바이에서 발생할 예정이던 테러 공격 정보를 앙카라를 경유하여 이스라엘 모사드에 전달했다고 보도하였다. 당시 뭄바이의 유대인 문화 센터(나리만 하우스)가 주요 공격 목표 중 하나로 지목되어 있었다.
핵 문제
1980년대, 이스라엘은 파키스탄의 카후타 핵 시설에 대해 1981년 이라크 오시라크 원자로 폭격(오페라 작전)과 유사한 선제 타격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은 인도의 지원과 영공 사용을 요청했으나 인도가 이를 거부하면서 계획은 무산되었다. 인도는 이스라엘의 공격 이후 파키스탄의 보복이 인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1998년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나와즈 샤리프 당시 총리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비밀 특사를 보내 파키스탄이 핵 기술을 이란 등 제3국에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약을 전달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관계 정상화 논의
2005년 9월 1일, 이스탄불에서 쿠르시드 마흐무드 카수리 파키스탄 외무장관과 실반 샬롬 이스라엘 외무장관이 최초로 공식 회담을 가졌다. 샬롬 장관은 이를 "역사적 회담"으로 평가하며 이슬람권과의 관계에 있어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그러나 페르베즈 무샤라프 당시 파키스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가 수립될 때까지 이스라엘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2005년 9월, 무샤라프는 뉴욕에서 열린 미국 유대인 회의(American Jewish Congress)에서 연설하였으며, 이 자리에서 "파키스탄은 이스라엘과 직접적인 갈등이 없으며, 이스라엘은 파키스탄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우리 국민들은 팔레스타인인들과 그들의 정당한 국가 건설에 대한 열망에 깊은 연민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8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인도 공식 방문 중 "이스라엘은 파키스탄의 적이 아니며, 파키스탄도 이스라엘을 적처럼 대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하였다.
아브라함 협정과 이후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이 체결된 이후, 당시 파키스탄 총리였던 임란 칸은 미국과 "적어도 한 국가"가 파키스탄 정부에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압박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해당 국가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이스라엘이 미국 내에서 가지는 막대한 영향력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임란 칸 정부는 "실현 가능하고 독립적이며 연속적인" 팔레스타인 국가가 수립될 때까지 이스라엘과 공식 양자 관계를 수립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2022년 5월, 파키스탄 텔레비전(PTV) 기자 아흐메드 쿠레시, 파키스탄계 유대인 시민 피셸 벤칼드, 파키스탄계 미국인들로 구성된 15명의 대표단이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종교 간 화합 대화에 참여하였다. 이 대표단은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을 예방하였다. 헤르초그 대통령은 이후 세계경제포럼에서 "이 정도 규모의 파키스탄 지도자 그룹이 이스라엘을 방문한 적은 없었다"고 언급하였다.
현황
파키스탄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두 국가 해법(1967년 이전 국경 내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지지하며, 이 조건이 충족되기 전까지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파키스탄 여권에는 "이 여권은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 유효함"이라는 문구가 명시되어 있으며, 이스라엘 국적자의 파키스탄 입국은 허용되지 않는다. 양국은 터키의 앙카라와 이스탄불에 있는 자국 대사관 및 총영사관을 통해 간접적인 의사소통과 정보 교환을 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