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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용

이순용(李淳鎔, 1897년 12월 8일~1988년 10월 9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관료, 정치인이다. 미국명은 Allen C. Wylie이다.

1897년 12월 8일 한성부(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재동)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전주 이씨이며, 아버지는 정미칠적(丁未七賊)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이재곤(李載崑)이다. 1913년 휘문의숙을 졸업하고 1918년 경성공업전문학교 응용화학과를 졸업한 후 동일은행에 근무하였으며, 연희전문학교 강사로도 활동하였다.

1919년 3·1 운동 이후 독립운동에 참여하였고,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해 상하이로 망명한 뒤 1922년 4월 월남 이상재(李商在)의 추천서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이승만의 측근으로 활동하였으며,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UCLA에서 수학하였다.

1942년 미국 정보조정국(COI, Coordinator of Information)이 중국을 통한 일본 침투 특수첩보작전 대원을 모집하자 이승만의 추천으로 미 육군 하사로 입대하였다. 메릴랜드 샹그리라(현 캠프 데이비드)에서 비밀 군사 훈련을 받았으나 작전은 중단되었다. 이후 COI가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로 개편되면서 OSS 요원으로 인도와 중국 쿤밍에서 활동하였으며, 한국광복군의 국내 진공작전 준비에 참여하였으나 일본의 항복으로 작전은 실행되지 못하였다.

1945년 광복 후 귀국하여 미 육군 중사 신분으로 미군 방첩대(CIC)에서 근무하였고, 백의사와 CIC의 연결 및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관여하였다. 미군정 해체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1949년 12월 레밍턴 타이프라이터 회사 대표로 귀국하였다.

1951년 5월 7일 제6대 내무부 장관에 임명되었으나, 미국 국적 문제로 국회에서 논란이 일었다. 임명 직후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였으나 1951년 11월 국회에서 내무부 장관 불신임 결의안이 가결되어 1952년 1월 12일 물러났다. 이후 같은 달 15일 체신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1952년 3월까지 재임하였다. 1952년 5월 대한해운공사 사장을 역임하였고, 1953년 5월 외자구매처장과 임시외자관리청장을 겸임하였으며, 1955년 2월 두 기관이 외자청으로 통합되면서 초대 외자청장으로 1960년 5월까지 재임하였다.

1953년 11월 서울 컨트리클럽을 창설하여 한국인이 처음으로 조성한 골프장을 건설하였다. 1957년 대한올림픽위원회 개인위원과 국민종합경기장 건설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88년 10월 9일 서울 강동구 길동 성심병원에서 사망하였으며, 경기도 김포군 하성면 가금리에 안장되었다. 골프계에서는 그의 공로를 기려 1984년부터 '이순용배 골프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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