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춘(李世春)은 동명이인으로, 조선 후기의 가객(歌客)과 현대의 통일운동가 두 인물이 존재한다.
1. 조선 후기의 가객 (李世春)
생몰년 미상. 조선 영조 때 활동한 가인(歌人)이다. 자는 자원(子元)이며, 일명 응태(應泰)라고도 한다. 삼국 시대 이후 전해 내려오던 가곡류의 창사를 시조 형식으로 고쳐 부른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시절가조(時節歌調) 또는 시조(時調)라는 명칭도 이 시기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1774년(영조 50) 신광수(申光洙)의 《석북집(石北集)》 〈관서악부(關西樂府)〉에 실린 시에 따르면, "시조에 장단을 배열한 것은 장안(평양)에서 온 이세춘에서 비롯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시조 창(唱)에 관한 가장 오래된 문헌 기록으로 평가된다. 악보는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중 유예지(遊藝志)와 이규경(李圭景)의 《구라철사금자보(歐邏鐵絲琴字譜)》에 전한다.
《해동가요(海東歌謠)》 고금창가제씨조(古今唱歌諸氏條)에는 허정(許珽), 장현(張炫), 김수장(金壽長), 김천택(金天澤) 등 56명의 명창과 함께 이세춘이 수록되어 있다. 가곡창(歌曲唱)에 능하였으며, 당시 평양을 중심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2. 현대의 통일운동가 (1928~2022)
1928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생애 대부분을 통일운동과 진보정치 운동에 헌신하였다. 평화이음 이사장, 이세춘민족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진보당,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범민련 남측본부) 등의 고문을 맡았다. 또한 '민중의당' 후보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이력이 있으며, 이후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진보당 등 진보정당 운동에 참여하였다.
말년에는 고향인 평양에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사업을 추진하였으며, 2018년 방북하여 관련 약정을 체결하였으나 대북 제재로 인해 실현되지 못하였다. 2022년 10월 12일 향년 94세로 별세하였으며,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결식장에서 추도식이 거행되었다.
※ 위 두 인물은 동명이인으로, 조선 후기 가객 이세춘과 현대 통일운동가 이세춘은 서로 다른 인물이다. 현대 인물 이세춘에 대해서는 공신력 있는 기관의 공식 전기 자료가 충분히 축적되어 있지 않아, 일부 생애 정보는 언론 보도에 의존하고 있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