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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림 (고려)

이성림(李成林, ? ~ 1388년)은 고려 후기의 고위 문신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검교첨의정승 임해군 이진(李瑱)의 증손이고, 문하시중을 지낸 계림부원군 이제현(李齊賢)이 작은할아버지이다. 아버지는 밀직(密直) 이수득(李壽得)이며, 염흥방(廉興邦)의 이부형(異父兄, 어머니가 다른 형)이다. 사위로는 삼사좌사 이존성(李存性)과 예문춘추관태학사 한상질(韓尙質)이 있다.

공민왕~우왕 시기에 감찰집의(監察執義), 대호군(大護軍), 좌상시(左常侍), 군부판서(軍簿判書),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 판삼사(判三司), 문하시중(門下侍中) 등을 역임하였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으로 공민왕이 복주(福州, 현 경상북도 안동)로 피난할 때 호종한 공로를 인정받아 1363년 윤3월 신축호종일등공신(辛丑護從一等功臣)에 책봉되었다. 1364년 5월에는 원나라에 저항하며 강소(江浙) 지역에 세력을 구축한 장사성(張士誠)을 접견하기 위해 고려 측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1371년 7월 신돈(辛旽)이 수원으로 유배될 때 왕안덕과 함께 신돈을 호송하였다. 1373년 10월 양광도도순문사(楊廣道都巡問使)로 재임하던 중 왜구의 침입을 막지 못한 죄로 유배되었다.

1375년(우왕 원년) 7월 이인임(李仁任)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다시 유배되었다. 이후 1385년 2월 우왕이 해주에서 사냥할 때 최영(崔榮)과 함께 호종하였고, 같은 해 7월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1381년 3월부터 1384년 윤10월까지 개경에 수창궁(壽昌宮)을 창건할 때 최영 등과 함께 조성도감판사(造成都監判事)로 활동하였다. 우왕 때에는 임견미(林堅味)와 함께 실록편수(實錄編修)를 주관하기도 하였다.

1387년 8월 문하시중격인 좌시중(左侍中)에 임명되었으나, 1388년(우왕 14) 정월 사전개혁(私田改革) 문제를 둘러싸고 우왕과 최영에 의해 전민(田民) 점탈의 표본으로 지목되어 염흥방의 무리로 몰려 옥에 갇혀 죽임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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