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 2세(이사벨라 2세, 스페인어: Isabel II, 1830년 10월 10일~1904년 4월 25일)는 스페인의 여왕으로, 1833년부터 1868년까지 통치하였다. 그녀는 프랑스 왕비 카롤린·리우와 페르난도 7세(전 로베르토·펠리페·에스테르디자)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의 사망으로 미성년자이던 시절에 왕위에 올랐다.
초기 생애
이사벨은 마드리드의 팔라시오 레알(Real Palacio)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정치적 갈등이 심화된 스페인에서 성장했으며, 아버지 로베르토·펠리페·에스테르디자(프리 인클루스된 로베르토·펠리페 2세)의 사후, 3세의 미성년자로서 왕위 계승권을 가졌다. 즉위 당시 스페인은 카를로스 5세와의 전쟁(카레테 전쟁) 등 복잡한 정세에 놓여 있었다.
통치 기간
- 정치적 상황: 이사벨이 통치한 시기는 스페인의 근대화와 정치적 혼란이 동시에 진행된 시기였다.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었으며, 군대와 교회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 이 시기에 스페인에서는 수차례의 반란과 쿠데타가 일어났고, 특히 1840년대와 1850년대에 여러 차례의 정부 교체가 있었다.
- 대외 정책: 이사벨은 스페인 제국의 해외 식민지 보유를 유지하려 했으며, 19세기 중반에 서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의 식민지 정책을 지속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경제적 부담과 정치적 반발이 발생하였다.
- 가정과 후계: 1846년 프랑스의 루이·프랑수아·셰비제와 결혼했으며, 이 결혼으로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 친밀한 외교 관계가 형성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일곱 명의 자녀가 태어났으며, 그 중 장남인 알폰소 12세가 차후 스페인의 왕위 계승자로 지목되었다.
퇴위와 망명
1868년 스페인 혁명(스페인 혁명, 즉 "덜 협동 반란")이 발생하면서 이사벨은 왕위에서 물러나야 했다. 혁명 세력은 군부와 자유주의자, 그리고 중산층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이사벨은 이탈리아의 사보이아 왕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녀는 1874년 알폰소 12세가 즉위하면서 스페인으로 복귀했지만, 왕위를 회복하지는 못했다.
사망 및 유산
이사벨은 1904년 4월 25일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했으며, 파리의 라 파우스트리 살라다라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녀의 통치 시기는 스페인 근대사의 전환점으로 평가받으며,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 개혁 요구가 겹친 시기였다는 점에서 학술적 관심을 받고 있다. 후대에는 이사벨의 통치가 스페인 왕정의 붕괴와 제3공화국 수립 과정에 미친 영향을 평가하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