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1917년 ~ 1976년 9월 28일)는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판사·검사·변호사를 두루 거쳐 1973년 4월부터 1976년 9월까지 대법원 판사(대법관)를 지냈다.
생애 및 경력
전라북도 전주 출생으로, 일본 중앙대학교 법문학과를 졸업하고 1943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1948년 7월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된 이후 법무부 법무과장, 서울고등법원 판사, 대구고등검찰청 차장검사, 광주지방법원 판사, 전주지방법원 판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법무부 행정국장 겸 대검찰청 검사를 끝으로 공직에서 퇴직하여 변호사를 개업하였으나, 당시 민복기 대법원장에 의해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발탁되었다. 1971년 9월에는 사법연수원 부원장에 임명되어 사법연수원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기여하였다. 유신헌법 아래에서 대통령이 대법관을 임명하게 된 이후인 1973년 3월,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 판사(대법관)에 임명되었다.
주요 재판 활동
대법관 재직 중이던 1974년 7월, 대법원 형사3부 재판장으로 서울제일교회 권호경 목사 등 5명에 대한 대통령긴급조치제1호 위반 및 내란예비음모 사건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하였다. 1975년 4월에는 이른바 인혁당 사건(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등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피고인 38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전원합의체 주심 판사를 맡아, 도예종 등 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해 사형을 확정하고 그 외 다수 피고인에 대해 무기징역 및 장기징역을 선고하는 등 원심을 확정하였다.(이 사건은 이후 재심에서 피고인 8명 전원이 무죄를 선고받아 '사법 살인'으로 비판받았다.)
사망 및 유산
대법관 재직 중이던 1976년 5월, 상고심 합의 도중 집무실에서 졸도하여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완치 후 퇴원했으며, 같은 해 9월 간암으로 재발하여 9월 28일 사망하였다. 개인적으로 보관 중이던 각국 법원 판례집, 법률 서적 등 1,400여 권을 사후 대법원에 기증하였으며, 저서로 《행정소송법 개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