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문(李丙文, 1930년 1월 3일 ~ 2019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 기업인, 사회운동가이자 저술가 겸 대학 교수이다. 대한민국 해병대에서 대장(大將) 계급까지 진급한 3인 중 한 명으로, 제9대 해병대사령관을 지냈다.
생애와 군 경력
이병문은 1930년 1월 3일 일제강점기 경성부(서울) 성동방에서 출생하였다. 한때 인천 제물포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며, 이후 경성부 성동방으로 돌아와 성장하였다.
1942년 경성재동소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경성경신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육군사관학교 정훈 1기로 입학하였다. 1949년 육군사관학교 정훈 1기로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으며, 1950년 4월 대한민국 해병대에 편입하여 해병 중위로 재임관하였다.
1950년에 해병 대위로 진급하였고, 한국전쟁 당시 진주지구와 진동리지구 전투 등에 참전하였다. 특히 1951년 3월 강원도 홍천에서 벌어진 가리산 전투에서 해병대 최초로 야간공격을 감행하여 목표고지를 점령한 전공으로 금성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이후 해병 제1사단 제2대대 중대장, 해병 제1연대 1대대장, 해병대사령관 비서실장, 해병 제1사단 3연대장, 해병 제1여단 참모장, 해병 제2상륙훈련여단장, 해병 제1여단장, 해병 제5여단장 등을 거쳤다.
1968년 해병 준장, 1969년 해병 소장으로 진급하며 해병 제1사단장을 지냈다. 1969~1970년 해병 1사단장 재직 당시에는 간첩 1명을 생포한 모포리 수색 작전과 간첩 2명을 사살한 진전리 작전 등 두 차례의 대간첩 작전을 지휘하였다.
1970년 8월 국방부 장관 예하 비서실 특별보좌관을 지냈고, 1970년 12월 해병 중장으로 진급하였다. 1971년 3월 국방부 운영차관보를 역임한 뒤, 1971년 7월 제9대 해병대사령관에 취임하면서 해병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이는 강기천, 정광호와 함께 대한민국 해병대에서 대장 계급에 오른 세 명 가운데 하나이며, 2025년 현재 기준 마지막 해병대 대장으로 기록된다.
1973년 해병대사령부 해체 이후 해병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예편 이후 활동
예편 후에는 정치 및 사회 활동에 참여하였다. 민주정의당 대표상임위원 겸 당무위원(1981년), 한국국민당 대표전임위원(1983~1984년), 신민주공화당 당무위원(1988년), 자유민주연합 당무위원(1995년), 신한국당 상임고문 겸 상무위원(1996년) 등을 역임하였다. 또한 인하대학교 초빙교수를 지내는 등 교육계에서도 활동하였다.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1964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1966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1968년) 등 여러 학위를 취득하였다.
상훈
은성화랑무공훈장(1952), 금성을지무공훈장(1952), 무성충무무공훈장(1953, 1954), 1등근무공로훈장(1962), 국방부장관표창(1964), 3등근무공로훈장(1966), 대통령표창(1968) 등을 수훈하였다.
사망과 안장
2019년 8월 15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군자동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장례는 해병대장으로 치러졌으며,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