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NewJeans)는 2022년 7월 22일 데뷔한 대한민국의 5인조 다국적 걸그룹으로, 하이브(HYBE) 산하 레이블인 어도어(ADOR) 소속이다. 그룹명은 '매일 찾게 되고 언제 입어도 질리지 않는 청바지(Jean)'처럼 시대의 아이콘이 되겠다는 포부와 'New Genes(새로운 유전자)'라는 언어유희에서 비롯되었다.
구성원
| 이름 | 본명 | 생년월일 | 국적 |
|---|---|---|---|
| 민지 (Minji) | 김민지 | 2004. 5. 7. | 대한민국 |
| 하니 (Hanni) | 팜하니 (Phạm Ngọc Hân) | 2004. 10. 6. | 베트남계 호주 |
| 해린 (Haerin) | 강해린 | 2006. 5. 15. | 대한민국 |
| 혜인 (Hyein) | 이혜인 | 2008. 4. 21. | 대한민국 |
| ~~다니엘 (Danielle)~~ | 다니엘 마쉬 (모지혜) | 2005. 4. 11. | 호주·한국 |
※ 다니엘은 2025년 12월 29일부로 전속계약이 종료되어 이전 구성원이 되었다.
데뷔 및 활동
2022년 7월 22일, 사전 프로모션 없이 데뷔 싱글 'Attention' 뮤직비디오를 깜짝 공개하며 데뷔했다. 이어 'Hype Boy', 'Cookie' 등을 발표했으며, 동명의 데뷔 EP 《New Jeans》는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2023년 1월 발매한 싱글 앨범 《OMG》의 선공개곡 'Ditto'는 한국 써클 디지털 차트에서 13주 연속 1위를 기록했고, 빌보드 핫 100과 영국 싱글 차트에 진입하는 성과를 냈다.
2023년 7월 발매한 두 번째 EP 《Get Up》은 미국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타이틀곡 'Super Shy'는 빌보드 글로벌 200 2위에 올랐다. 2024년에는 'How Sweet'와 일본 데뷔 싱글 'Supernatural'을 발매하고 도쿄돔 팬미팅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음악 스타일
1990~2000년대 R&B와 팝을 연상시키는 미드템포의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 스타일이 특징이다. 기존 K-pop의 폭발적인 EDM 요소 대신 잔잔한 비트, 몽환적인 신시사이저, 라이브 보컬을 강조하며 '뉴트로'(newtro) 미학으로 평가받는다. 주요 프로듀서로는 250과 FRNK(박진수)가 있으며, 민희진 전 대표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소속사 분쟁
2024년 4월, 하이브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 간의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다. 뉴진스 멤버들은 민희진을 공개적으로 지지했으며, 2024년 11월 28일 어도어와의 전속계약 해지를 선언했다. 이후 그룹명을 'NJZ'로 변경했다가 법원의 가처분 인용으로 사용을 중단했다. 2025년 10월 법원이 어도어 측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후 해린·혜인·하니는 복귀했으며 다니엘은 계약이 종료되었다. 민지의 계약 논의는 2026년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수상 및 기록
- 2023년 MAMA '올해의 아티스트상', 멜론 뮤직 어워드 '올해의 가수상' 동시 수상
- 2024년 빌보드 위민 인 뮤직 '올해의 그룹상' (K-pop 그룹 최초)
- IFPI 2023년 세계에서 8번째로 많이 판매된 아티스트
- 스포티파이 10억 스트리밍 최단 기간 달성 (기네스 세계 기록)
- 타임지 '2023 차세대 리더' 선정
대표 디스코그래피
- EP: 《New Jeans》(2022), 《Get Up》(2023)
- 싱글 앨범: 《OMG》(2023)
- 더블 싱글: 《How Sweet》(2024), 《Supernatural》(2024·일본 데뷔)
- 리믹스 앨범: 《NJWMX》(2023)
이반 마제파
이반 스테파노비치 마제파(우크라이나어: Іван Степанович Мазепа, 1639년 3월 30일 ~ 1709년 10월 2일)는 우크라이나의 카자크(코자크) 지도자이자 헤트만(hetman)이다. 1687년부터 1708년까지 자포리자 카자크 헤트만국의 수장을 지냈으며, 보흐단 흐멜니츠키와 함께 우크라이나 독립운동의 상징적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생애
초기 생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현재의 우크라이나 키이우주)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키이우-모힐라 아카데미와 바르샤바의 예수회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1656~1659년 네덜란드에서 포술 등 군사학을 공부한 엘리트였다.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 폴란드어, 라틴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등 여러 언어에 능통했다. 폴란드 국왕 얀 2세 카지미에시의 궁정에서 시종으로 일했으며, 외교관으로도 활동했다.
헤트만 즉위
1687년 좌안 우크라이나의 헤트만으로 추대되었다. 재임 기간 동안 사회적 안정과 경제 부흥을 이루었고, 문화·예술을 후원하여 우크라이나 바로크 양식의 교회들을 다수 건립했다. 키이우-모힐라 아카데미를 확장하여 2,000명의 학생을 수용하는 교육기관으로 발전시켰다. 1704년에는 우안 우크라이나를 장악하여 카자크 헤트만국을 동서로 통일했다.
대북방전쟁과 스웨덴 동맹
대북방전쟁(1700~1721) 초기에는 러시아 편에 섰으나, 표트르 1세가 중앙집권화와 군제 개혁을 추진하면서 카자크의 자치권이 위협받자 관계가 악화되었다. 결정적으로 1708년 스웨덴의 동맹국 폴란드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위기에 처했을 때 표트르 1세가 병력 부족을 이유로 지원을 거부하자, 마제파는 스웨덴 국왕 칼 12세와 동맹을 맺고 러시아에 맞섰다.
폴타바 전투와 최후
1709년 6월 폴타바 전투에서 스웨덴-카자크 연합군이 러시아군에 대패했다. 마제파는 칼 12세와 함께 오스만 제국 치하의 몰도바(현재 루마니아) 벤데르로 망명했으며, 그곳에서 사망했다. 갈라치(루마니아)에 안장되었으나 그의 무덤은 여러 차례 훼손되어 현재는 소실되었다.
역사적 평가
러시아에서는 반역자로 낙인찍혔으며, 러시아 정교회는 1708년 그를 파문했다. 반면 우크라이나에서는 독립된 카자크 국가를 세우려 했던 독립지도자이자 민족영웅으로 숭앙받는다.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 공식적으로 재평가되어, 현재 우크라이나 10흐리우냐 지폐의 도안 인물이 되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그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으며, 우크라이나 해군의 아다급 초계함 1번함이 '헤트만 이반 마제파'로 명명되었다.
문화적 영향
마제파의 생애는 유럽 낭만주의 예술에 큰 영감을 주었다.
- 문학: 조지 고든 바이런의 서사시 《마제파》(1819),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폴타바》(1828~1829), 빅토르 위고의 시 《마제파》(1829)
- 음악: 프란츠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제4번 《마제파》 및 교향시 제6번 《마제파》,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마제파》(1881~1883)
- 미술: 테오도르 제리코의 그림 《마제파》(1823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