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철(李敏哲, 1613년~1715년)은 조선 중기의 과학자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영의정을 지낸 이경여(李敬輿)의 서자(庶子)이다. 1646년(인조 24) 아버지가 민회빈 강씨 사건에 연루되어 진도(珍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될 때 배소에 따라가 시중들었으며, 이 기간 동안 아버지로부터 《서경》의 선기옥형(璿璣玉衡)과 혼천의법(渾天儀法) 등을 배워 천문의기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또한 자격루(自擊漏)와 혼천시계 등을 직접 제작하였다.
1648년 전력부위(展力副尉)라는 종9품 잡직으로 관직에 올랐다. 1664년(현종 5) 왕명으로 관상감에 들어가 측후기(測候器)와 혼천의(渾天儀)를 제작하였는데, 특히 혼천의 속에 회전 지구의(地球儀)를 넣어 지전설(地轉說, 지구 자전설)을 입증한 것으로 평가된다. 1669년에는 세종대 이후의 전통을 계승한 수격식(水激式) 선기옥형을 제작하였으며, 이 천문시계는 송이영(宋以穎)이 만든 추동식(錘動式) 기계장치 천문시계와 함께 조선 과학사의 중요한 업적으로 꼽힌다.
1674년 첨지중추부사에 올랐고, 이후 이주첨사·이성현감·영월군수·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687년(숙종 13)에는 현종대에 만들었던 선기옥형을 대대적으로 수리하여 이듬해 완성하였고, 창덕궁 희정당 남쪽에 제정각(齊政閣)을 지어 이를 설치하였다. 또한 1683년에는 성능이 좋은 수차(水車)를 제작하여 관개(灌漑)에 이용하게 하였으며, 대(竹)로 만든 물시계도 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