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시(裡里市)는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북서부에 위치하였던 대한민국의 옛 행정구역이다. 1995년 5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근의 익산군과 통합되어 익산시가 신설되면서 폐지되었다.
명칭 유래 '이리'라는 지명은 이 지역의 순우리말 옛 지명인 '솜리'(또는 '솝리', '솜니')를 한자로 차용하여 '裡里'로 표기한 데서 비롯되었다. '솜리'는 '속(안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넓은 만경평야 속에 구릉지 형태로 자리 잡은 지형적 특징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소력지현(所力只縣)에 속하였으며, 신라 통일 후 757년(경덕왕 16) 옥야현(沃野縣)으로 개칭되어 금마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초기에는 전주에 소속되었고, 조선시대에도 전주의 속현으로 유지되었다. 1899년 옥야는 전주에서 분리되어 익산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리 지방과 여산·함열·용인이 합쳐져 익산군이 되었고, 1931년 익산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가 이리읍으로 개칭되어 익산군에서 분리되었다. 1947년 이리부(裡里府)로 승격되었고, 1949년 이리시로 개칭되었다. 1994년 말 당시 이리시의 면적은 83.20㎢, 인구는 약 22만 1,759명이었다.
철도 교통의 중심지 이리시는 호남선과 전라선이 교차하는 철도 교통의 요지로 성장하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호남평야에서 수탈한 쌀을 수송하기 위해 호남선을 부설하고 이리역(현 익산역)을 설치하면서 급속한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주요 사건 1977년 이리역에서 다이너마이트 폭발 사고(이리역 폭발사고)가 발생하여 큰 인명 피해를 초래하였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적 지원이 이루어지면서 도시 재건의 계기가 되었다.
폐지 1995년 5월 1일, 이리시는 익산군과 통합되어 익산시로 신설되면서 소멸하였다. 현재 '이리'라는 명칭은 익산시의 일부 지역(이리고등학교, 이리초등학교 등)의 학교명이나 지명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