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든 협정(Eden Agreement)은 1786년 9월 26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과 프랑스 왕국 사이에 체결된 상업 조약이다. 영국 측 협상가 윌리엄 이든(William Eden, 1744~1814)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프랑스 측은 조제프 마티아스 제라르 드 레네발(Joseph Matthias Gérard de Rayneval)이 대표했다. 이 조약은 이른바 '이든 조약'(Eden Treaty) 또는 '영불 상업 조약'(Anglo-French Commercial Treaty)으로도 불린다.
역사적 배경
18세기 후반, 영국과 프랑스는 중상주의 정책 아래 높은 관세와 무역 제한을 유지하며 경제적 대립을 지속해 왔다. 영국은 미국 독립 전쟁에서 13개 식민지를 상실한 데 이어 2억 5천만 파운드에 달하는 국가 부채와 심각한 암시장 문제를 겪고 있었다. 프랑스 역시 캐나다와 인도 식민지 대부분을 잃고 막대한 국가 부채에 시달리며 재정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영국 총리 소(小) 윌리엄 피트(William Pitt the Younger)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에 영향을 받아 자유무역 정책을 추진하였고, 이에 따라 1785년 말 윌리엄 이든을 프랑스와의 상업 회담 수석 협상가로 임명하였다.
주요 내용
이 조약은 양국 간 관세를 대폭 인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주요 품목별 고정 관세율은 다음과 같다.
- 맥주: 30%
- 가죽 제품: 15%
- 유리, 면직물, 모직물: 12%
- 철물, 칼붙이, 계측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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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특정 상품(프랑스 올리브유, 양국산 모자 등)과 조약에 명시되지 않은 상품에 대해 최혜국 대우를 부여하였다. 프랑스 와인은 포르투갈 와인이 부담하는 관세 이상을 초과하지 않도록 규정되었다.
영향과 결과
영국에서는 대규모 산업 부문의 지지를 받았으나, 프랑스에서는 값싼 영국 공산품의 대량 유입으로 인해 수공업 부문이 큰 타격을 입었다. 1787년 노르망디 아브빌과 보르도等地에서 면직물 및 양모 제조업자들의 폭력적 시위가 발생하였다. 프랑스 경제는 영국 제품의 덤핑으로 인한 상업 위기를 겪었으며, 이 조약은 이후 프랑스 혁명(1789)의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한다.
종료
이 조약은 약 5년 반 동안 유지되었다. 1788~89년 프랑스의 흉작과 프랑스 혁명 발발로 구체제가 붕괴되면서 조약도 함께 효력을 상실하였다. 1793년 국민공회에서 영국의 외국인법(Aliens Act 1793)이 조약 조항을 위반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같은 해 2월 영국과 프랑스 간 전쟁이 발발하면서 조약은 완전히 폐기되었다.
역사적 의의
비록 단명했지만, 이든 협정은 중상주의 체제에서 자유무역으로 전환하는 과정의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된다. 높은 관세와 금지법, 고립주의적 경제 이념이 지배하던 시대에 체결된 최초의 국가 간 자유통상협정으로서, 이후 자유무역 질서의 기초를 마련한 사례로 경제사에서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