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주(李德柱, 1908년 ~ 1935년 2월)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성별은 남성이며, 출생지는 황해도 신천이다. 아버지는 이원국, 어머니는 배현후이다. 이명(異名)으로 서이균(徐利均)이 있다.
출생 연도에 대해서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이덕주의 자필 이력서에 따르면 1909년 1월 2일 황해도 신천읍에서 태어난 것으로 나타나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주요 자료에서는 1908년 출생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덕주는 6세에 보통학교에 입학하고 12세에 해주고보(海州高普)에 입학하여 경성 양정고보(養正高普)로 전학하였다고 한다. 이후 17세 때 과수업, 19세 때 재목상을 하다가 20세에 상하이(上海)로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1926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김구(金九)와 조국독립을 위한 독립운동에 몸바칠 것을 서약하고 항일운동에 주력하였다. 1931년 7월에는 상해한인독립운동청년동맹(上海韓人獨立運動靑年同盟) 창립에 참여하였다.
1932년 초, 상해한인청년당에 속하여 김구의 지시를 받고 유진만(兪鎭萬)·금긍호(琴兢鎬) 등과 함께 당시 조선총독부 총독이었던 우가키 가즈시게 암살 및 일본에 잠입하여 요로 고관 처형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권총 2정을 휴대하고 국내에 들어와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2년 4월, 이덕주는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7년형을 언도받고 해주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던 1935년 2월 옥사하였다. 당시 향년 27세였다.
사후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또한 2022년 6월에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