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 지크만(독일어: Ida Siekmann, 1902년 8월 23일 ~ 1961년 8월 22일)은 베를린 장벽 건설 이후 장벽을 넘으려다 사망한 최초의 공식 희생자로 기록된 독일의 간호사이다.
1902년 8월 23일, 독일 제국 당시 서프로이센 마리엔베르더 근교 고르켄(현재의 폴란드 포모제주 크비진군 구르키)에서 태어났다. 이후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간호사로 일했으며, 1961년 당시에는 과부였다. 지크만은 베를린 미테 지역의 베르나우어 슈트라세(Bernauer Straße) 48번지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여동생 마사 L.이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베를린은 4개 연합국 부문으로 분할되었는데, 베르나우어 슈트라세는 도로와 보도는 서베를린(프랑스 구역)에 속했지만 남쪽 건물들의 정면은 동베를린(소련 구역)에 위치하는 독특한 경계 지역이었다. 따라서 지크만은 집을 나서기만 해도 정기적으로 동서베를린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었다.
1961년 8월 13일 동독 당국이 베를린 장벽 건설을 시작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8월 18일 동독 지도자 발터 울브리히트는 국경 부대에게 베르나우어 슈트라세 남쪽 건물들의 1층 출입구와 창문을 벽돌로 막도록 명령했고, 8월 21일에는 지크만이 살던 48번지의 출입문과 창문도 동독 당국에 의해 완전히 봉쇄되었다.
다음 날인 1961년 8월 22일, 59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이른 아침, 지크만은 서베를린 쪽으로 향한 4층(독일 기준 3층) 아파트 창문에서 이불과 소지품을 먼저 던진 뒤 몸을 날렸다. 그러나 서베를린 소방관들이 구조용 점프 시트를 제대로 펴기도 전에 뛰어내렸고, 인도에 추락하여 중상을 입었다. 그녀는 즉시 라자루스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도중에 사망하였다. 이로써 지크만은 베를린 장벽 건설 시작 9일 만에 장벽과 관련하여 사망한 첫 번째 희생자가 되었다.
지크만의 시신은 1961년 8월 29일 세슈트라세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후 베르나우어 슈트라세 48번지에는 그녀를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으며, 로버트 F. 케네디와 마카리오스 대주교를 포함한 외국 정치인들이 이 곳을 방문하여 베를린 장벽 희생자들을 추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