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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카이 다케루

이누카이 다케루(犬養 健, Inukai Takeru, 1896년 7월 28일 ~ 1960년 8월 28일)는 쇼와 시대 일본의 정치인이자 소설가이다. 이누카이 겐(Inukai Ken)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일본 제29대 내각총리대신 이누카이 쓰요시(犬養毅)의 셋째 아들이다.

도쿄 우시고메구(현 신주쿠구)에서 태어났다. 도쿄제국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고 작가로 활동하였다. 학생 시절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아 시라카바(白樺) 문학 그룹에 참여하였으며, 무샤노코지 사네아쓰(武者小路実篤)와 나가요 요시로(長与善郎)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23년 첫 작품집을 간행하였고, 일본 PEN 클럽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30년 중의원 선거에서 입헌정우회(立憲政友会) 공천으로 도쿄 제2구에 출마하여 처음 당선되었으며, 이후 12회 연속 당선되어 사망 시까지 의원직을 유지하였다. 1931년 아버지 쓰요시가 총리로 취임하자 그의 비서를 맡았다. 1932년 5·15 사건 당시, 아버지 쓰요시가 암살되던 날 이누카이 다케루는 당시 일본을 방문 중이던 찰리 채플린을 스모 경기에 데려간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암살자들은 채플린도 함께 제거할 계획이었으나 이 일정으로 인해 실행되지 못했다.

아버지 사후, 도쿄 지역구를 떠나 아버지의 지역구였던 오카야마 제2구를 승계받았다. 제1차 고노에 내각에서 체신성 참여관을 지냈다. 1939년 입헌정우회가 분열되었을 때는 가네미쓰 쓰네오(兼松常雄)가 이끄는 중립파에 속했다. 1941년 조르게 사건(소련 스파이 사건)에 연루된 의혹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으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42년 총선거에서는 대정익찬회(大政翼賛会)에 반대하는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시데하라 내각에서 외무정무차관을 지냈다. 일본진보당(日本進歩党) 결성에 참여하였으며, 1947년 진보당이 민주당(民主党)으로 전환된 후 1948년 아시다 히토시(芦田均)가 수뢰 혐의로 체포되자 민주당 총재직을 승계하였다. 1950년에는 자신의 파벌을 이끌고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자유당(自由党)에 합류하였다.

1952년 10월부터 1954년 4월까지 제4차 및 제5차 요시다 내각에서 법무대신(法務大臣)을 역임하였다. 1954년 조선비리 사건(造船疑獄) 당시, 요시다 총리의 압력으로 자유당 간사장 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의 체포를 지휘권을 발동하여 중지시켰다. 이에 대해 야당과 여론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여 다음 날 법무대신에서 사임하였고, 이 사건은 곧 요시다 내각의 총사퇴로 이어졌다.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자유민주당(自由民主党)이 결성될 때 참여하였다. 1960년 8월 28일 도쿄에서 6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도쿄 아오야마 묘지(青山霊園)에 안장되었다. 아들 이누카이 야스히코(犬養康彦)는 교도통신(共同通信) 사장을 지냈으며, 딸 이누카이 미치코(犬養道子)는 작가이자 자선가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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