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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세이게쓰

이노우에 세이게쓰(일본어: 井上井月, いのうえ せいげつ)는 19세기 일본의 하이쿠 시인이다. 생년은 1822년으로 추정되며, 1887년 3월 10일(메이지 20년 음력 2월 16일)에 사망하였다. 별호는 야나기노이에 세이게쓰(柳の家井月), 북월어인(北越漁人) 등이 있다.

세이게쓰의 출신은 명확하지 않다. 다카토번(高遠藩)의 가로(家老)였던 오카무라 키쿠소(岡村菊叟)가 전한 바에 따르면, 세이게쓰의 본명은 이노우에 카츠조(井上克三)이며 에치고국 나가오카번(長岡藩) 출신이라고 하나, 나가오카번의 관련 문서가 현존하지 않아 확증할 수 없다. 다만 세이게쓰의 작품에서 에치고 지방 사투리의 특징인 イ(이)음과 エ(에)음의 혼동이 자주 나타나는 점이 에치고국 출신이라는 정황 증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1858년(안세이 5년) 무렵, 30대 후반의 나이로 갑자기 신슈(信州, 오늘날의 나가노현) 이나다니(伊那谷)에 나타났으며, 이후 30년간 이 지역을 중심으로 방랑 생활을 하였다. 30대 이전의 행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항설에 따르면 1839년(덴포 10년) 에도(江戸)에 나타났다가 기사카타(木賤)에서 아카시(明石)까지 유랑했다고 전해지나 확실하지 않다. 1852년(가에이 5년) 나가노에서 간행된 요시무라 모쿠가(吉村木鵞)의 어머니 추도집에 세이게쓰의 하이쿠가 실려 있는 점으로 보아, 늦어도 이 무렵에는 하이쿠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나다니는 원래 호학(好学)의 기풍이 있고 풍류를 즐기는 경향이 있는 고장이었기에, 붓글씨에 능하고 하이쿠를 잘 지었던 세이게쓰는 문화인으로서 지역민에게 환영받았다. 그는 이나다니의 풍류인들에게 하이쿠를 지어 주거나 시문을 휘호하는 대가로 의식주를 얻으며 남신슈(나가노현 남부) 일대를 방랑하였다. 불결한 생활 탓에 여성과 아이들에게는 "거지 세이게쓰(乞食井月)"라 불리며 기피되었으나, 하이쿠를 취미로 하는 부유층 남성들에게는 우대받았으며 제자에게 사사받는 경우도 있었다.

1863년(분큐 3년) 오카무라 키쿠소와 면회하여 하이쿠집 『에치고 사자(越後獅子)』의 서문을 부탁하였고, 1864년(겐지 원년)에는 젠코지(善光寺) 호쇼인(宝勝院)에 머물며 『이에즈토집(家つと集)』을 편집하였다. 1879년(메이지 12년)에는 초암을 세우고 정착하려 시도하였으나 절차상 문제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885년(메이지 18년) 가을 무렵 『여파의 수경(余波の水茎)』을 간행하였으며, 이 책의 발문에서 후에 대표구로 평가받는 "떨어진 밤이 / 자리를 정한다면 / 움푹 패인 땅(落栗の座を定むるや窪溜り)"이라는 하이쿠를 남겼다.

같은 해, 건강을 염려한 제자 시오바라 바이칸(塩原梅関)의 주선으로 시오바라 가문에 입적되어 호적상 이름이 시오바라 세이스케(塩原清助)가 되었다. 1886년 12월 말 이나촌에서 길가에 쓰러져 있는 채로 발견되어 시오바라가에서 간병을 받았으나, 이듬해 1887년 3월 10일 향년 66세로 사망하였다.

세이게쓰의 작품은 후세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타네다 산토카(種田山頭火), 츠게 요시하루(つげ義春)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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