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령(李貴齡, 1346~1439)은 고려 말기와 조선 전기에 활동한 문신이다.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수지(修之), 호는 계은(桂隱)이다. 시호는 강호(康胡)이다.
고려 말에 판선공시사(判繕工寺事)와 청주 등지의 관군만호(管軍萬戶)를 지냈다. 1392년 조선이 개국되자 태조가 즉위하기 전에 세운 공로로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1394년 중군사마(中軍司馬)를 거쳐 형조와 예조의 전서(典書)를 지냈고, 이후 길주도도안무찰리사(吉州道都安撫察理使)와 동북면도순문병마도절제사(東北面都巡問兵馬都節制使) 등을 역임하였다.
태종 때 원종공신이 되어 두 차례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판승녕부사(判承寧府事)·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병조판서·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판좌군도총제부사(判左軍都摠制府事)·변정도감제조(辨定都監提調)·삼군판부사(三軍判府事) 등의 관직을 두루 거쳤다. 1415년(태종 15) 검교우의정(檢校右議政)을 지내고, 이듬해 검교좌의정(檢校左議政)이 되었다가 곧 좌의정으로 사직하였다.
퇴관 후 경기도 용인 하동촌(下東村) 내곡(內谷)에서 20여 년을 한가롭게 지냈다. 1435년(세종 17) 세종이 근정전에서 양로연(養老宴)을 베풀어 주었으며, 1439년 9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나라에서는 이틀 동안 조회를 정지하고 조의를 표하였으며, 부물(賻物)을 내리고 관에서 장사를 돌보아 주었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