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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귀

이귀(李貴, 1557~1633)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옥여(玉汝), 호는 묵재(默齋)이다. 시호는 충정(忠定)이며,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에 봉해졌다. 세조조의 문신 이석형(李石亨)의 5대손이며, 아버지는 증 영의정에 추증된 이정화(李廷華)이다.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82년(선조 15) 생원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강릉참봉(康陵參奉)으로 있던 중 의병을 모집하였고, 이후 이덕형과 이항복의 주청으로 삼도소모관(三道召募官)에 임명되어 군사 모집과 민심 수습에 힘썼다. 체찰사 유성룡(柳成龍)을 도와 서울 수복전에도 기여하였다. 1603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형조좌랑, 안산군수, 배천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광해군 집권 시기에는 광해군의 난정을 개탄하고 김류(金瑬), 신경진(申景禛), 최명길(崔鳴吉), 김자점(金自點) 등과 함께 반정을 준비하였다. 1623년(광해군 15) 3월, 광해군을 폐하고 능양군(綾陽君, 후일 인조)을 왕으로 추대하는 인조반정(仁祖反正)을 성공시켰으며,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이후 호위대장,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우참찬, 대사헌, 좌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인조 집권 후에는 남한산성 수축, 호패법 실시, 무사 양성, 국방 강화 등을 건의하였다. 1626년(인조 4) 병조판서와 이조판서를 지냈으며, 인헌왕후(仁獻王后)의 상복 기간을 만 2년으로 할 것을 주장하다가 대간의 탄핵으로 사직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왕을 강화도에 호종하였고, 최명길과 함께 화의를 주장하였다.

성격이 강직하고 고집이 세기로 유명하였으며, 당쟁이 치열하고 명·청 관계의 외교가 복잡한 시기에 활동하였다. 저서로는 『묵재일기(默齋日記)』 3권이 있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인조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그의 아들 이시백(李時白)과 이시방(李時昉)도 조선 후기의 주요 관료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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