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응(李喬應) 은 조선 후기의 왕족 출신 유생으로, 1852년 1월 19일에 태어나 1918년 7월 25일에 사망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휘는 교응(喬應), 자는 공세(公世), 호는 금초(錦樵)이다. 덕흥대원군의 11대손이며, 종실 연성수 이복령의 9대손, 종실 광성군 이제길의 8대손이다. 아버지는 이용식(李容植)이다.
1880년(고종 17년) 경진년 증광시(增廣試)에서 진사 3등으로 급제하여 성균관 진사 등을 지냈다. 1910년 경술국치(한일병합) 이후에는 낙향하여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에서 은둔 생활을 하였다. 대한민국 제40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李海瓚)의 증조부이기도 하다.
한편, 동음(同音) 한자 표기인 이교응(李敎應) 이라는 인물이 동학농민혁명 관련 사료에 등장한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사료 아카이브에 따르면, 관군의 초토사(招討使) 휘하 편비(褊裨, 막료)였던 이교응(李教應)이 전투 중 사망한 기록이 확인된다. 다만 이 인물이 위의 이교응(李喬應)과 동일인인지 여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