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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식

이교식(李敎植)은 동명이인으로, 역사적으로 두 명의 인물이 확인된다.

1. 일제강점기 관료 이교식 (1872년 12월 ~ ?)

이교식(李敎植, 일본식 이름: 南田敎植 / 미나미다 교쇼쿠)은 일제강점기의 관료이다. 본적은 평안남도 대동군 남형제산면이다.

1902년 12월 27일 대한제국 농상공부 통신사 전화과 주사로 임명되었으며, 1908년 궁내부 서기관에 임명되었다. 1910년 8월 29일 일본 정부로부터 효자절부상을 받았다. 세 차례(1920년, 1927년, 1930년)에 걸쳐 평안남도 민선 도평의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35년 4월부터 1938년 4월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1941년 9월에는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광복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어 불구속 송치되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중추원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중추원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2. 대한민국 공무원·정치인 이교식 (1954년 1월 24일 ~ )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읍 출생이다. 온양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 산업심리학과를 졸업하였으며, 국가정보원에서 이사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아산시정연구원 원장을 지냈으며, 자유한국당(現 국민의힘) 소속으로 아산시장 선거에 여러 차례 출마하였다. 저서로는 『아산인이여 아산발전의 승부사가 되자!』가 있다.

※ 두 인물 모두 실존 인물이며, 위키백과 및 언론 보도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정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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