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용 (조선)

이관용(李觀用, ? ~ 1593년)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방어에 크게 공헌한 인물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이며, 자는 공필(公弼)이다.

그는 1583년(선조 16년)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진주목사(晉州牧使)로 재직 중이었다. 1592년(선조 25년) 10월, 일본군이 호남으로 진출하기 위해 진주성을 공격해왔을 때, 그는 김시민(金時敏) 장군과 함께 3,800여 명의 병력으로 수만 명에 달하는 일본군을 상대로 진주성을 방어하여 격퇴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는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제1차 진주성 전투)으로 기록된다.

이후 그는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에 임명되어 계속해서 진주성을 수비하였다. 1593년(선조 26년) 6월, 왜군이 다시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진주성을 공격해왔다(제2차 진주성 전투, 계사 왜란). 이관용은 황진(黃進), 김천일(金千鎰), 최경회(崔慶會) 등과 함께 결사적으로 항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하였다.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사후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되었으며, 진주의 창렬사(彰烈祠)에 배향되었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