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용(李灌鎔, 1891년 ~ 몰년 미상)은 대한제국의 황족으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서손이자 완은군 이재선의 양자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1891년 2월 23일(음력 1월 15일)에 출생하였다.
가계와 입양 배경
이관용은 조선 왕실 인평대군의 후손으로, 이조판서를 지낸 이명응의 손자이며 군수(郡守)를 지낸 이재택의 둘째 아들이다. 양아버지인 이재선은 흥선대원군의 서자로, 1881년 안기영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당하였다. 당시 이재선에게는 딸들만 있었고 아들이 없었기에, 그의 부인 평산 신씨가 상소를 올려 양자를 들이기를 청하였고, 먼 친척인 이재택의 차남인 이관용이 사후양자로 정해져 신씨 부인에게 보내졌다.
생애와 활동
이관용은 양어머니 신씨에게 입양되어 양육되었으나, 왕족에게 부여되는 작위나 예우를 받지 못하고 어렵게 생활하였다. 성년이 되기 전까지는 이준용, 이재면 등이 이재선의 묘소를 대신 관리하고 성묘하였다. 1907년 양아버지 이재선이 복권되어 완은군에 추증되면서, 이관용은 이후 왕궁에 출입하고 문안하는 등의 예우를 받았다.
1912년에는 양궁에 이희, 이강, 이준용 등과 함께 출입하였다. 1921년 말 부상을 당하여 순종으로부터 치료비 60원을 하사받았으며, 1922년부터 1924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순종으로부터 생계 구조비와 가계 보조비를 지급받은 기록이 《순종실록부록》에 나타난다.
한때 그는 주식투자 등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서울로 올라갔다가, 양어머니 신씨가 파양(罷養)을 청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경성지방법원은 조선 사회의 통념상 이미 오래전부터 양자 관계가 유지되어 왔다는 이유를 들어 이관용의 손을 들어주었다.
1926년 4월 순종이 사망하자, 이관용은 장례식을 집행하는 종척 집사(宗戚執事)의 한 사람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5월 순종의 능을 천릉(遷陵)할 때에도 종척 집사로 임명되었다.
사후
이관용의 사망 시점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자녀로는 2남 4녀를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양아버지 이재선의 묘소는 경기도 화도읍 흥원묘역에 있으며, 이관용의 묘소는 경기도 포천 회암사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같은 시기에 한자가 다른 동명이인으로 조선 제14대 왕 선조의 9남 경창군 이주의 후손인 독립운동가 이관용(李灌鎔, 1894년~1933년)도 존재한다. 이 인물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언론인, 교육자로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부위원장을 지냈고, 1921년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에서 한국인 최초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