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 도모미쓰(伊賀朝光, いが ともみつ)는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가마쿠라 시대 전기에 걸쳐 활동한 일본의 무장이자 고케닌(御家人)으로, 이가 씨(伊賀氏)의 시조이다. 출생 연도는 불명이며, 겐포 3년(1215년) 9월 14일, 즉 1215년 10월 8일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계와 출신
이가 도모미쓰는 간토 지방의 호족인 후지와라 북가(藤原北家) 히데사토류(秀郷流)에 속하는 후지와라노 미츠사토(藤原光郷)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미나모토노 쿠니나리(源国成)의 딸이다. 별칭으로는 토코로쿠로(所六郎)로 불렸다. 그는 장인소(蔵人所)에 대대로 쓰였던 하급 관인 가문 출신이었으며, 이후 이가노카미(伊賀守, 이가 국의 지방장관)에 임명되면서 이가 씨를 칭하게 되었다.
관직과 주요 행적
- 겐큐 원년(1190년) 11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의 교토 상경(上洛)에 공봉(供奉)하였다.
- 쇼지 연간(1199~1200년)에 좌위문소위(左衛門少尉)에 임명되었다.
- 조겐 4년(1210년) 3월에 이가노카미(伊賀守)에 임명되었다.
- 겐랴쿠 2년(1212년) 12월에 종5위상(従五位上)에 올랐다.
- 겐닌 3년(1203년)의 히키 요시카즈의 난(比企能員の乱)과 겐포 원년(1213년)의 와다 요시모리의 난(和田義盛の乱)에서 공을 세웠다.
가문의 후일
그의 딸 이가노카타(伊賀の方)를 후실(後室)로 맞이한 호조 요시토키(北条義時)가 가마쿠라 막부의 2대 싯켄(執権)이 되면서, 도모미쓰의 자녀들은 요시토키의 외척(外戚)으로서 활약하게 되었다. 도모미쓰가 사망한 다음 날, 야마시로노마에츠카사 유키마사(山城前司行方)의 집 뒷산에 매장되었을 때 호조 요시토키도 참례하였다고 전해진다.
가족 구성
도모미쓰의 자녀로는 장남 미츠스에(光季), 차남 미츠무네(光宗), 3남 미츠스케(光資), 4남 토모유키(朝行), 5남 미츠시게(光重)와 딸 이가노카타가 알려져 있다. 장남 미츠스에는 조큐 3년(1221년) 조큐의 난(承久の乱) 때 교토 습격을 받아 자살하였으며, 3남 미츠스케는 조오 3년(1224년)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차남 미츠무네, 4남 토모유키, 5남 미츠시게와 이가노카타는 같은 해 조오 3년(1224년) 6월, 이른바 "이가 씨의 변(伊賀氏の変)"으로 유배되었으나, 가로쿠 원년(1225년) 호조 마사코(北条政子)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막부 정치에 복귀를 허락받았다.
이가 도모미쓰는 일본 중세 초기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 과정에서 활동한 인물로, 이후 호조 씨의 외척 가문으로서 가마쿠라 정권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이가 씨의 시조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