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의릉 (순정왕후)

의릉(懿陵)은 고려 제31대 공민왕(재위 1351~1374)의 제6비(여섯 번째 후궁)이자, 우왕(왕우, 재위 1374~1388)의 법적 모후(법모·양모)로 추존된 순정왕후 한씨(順靜王后 韓氏, 1347~1376)의 능이다. 소재지는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 고령리 일대이며, 봉명산 기슭에 위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순정왕후는 곡산 한씨(谷山韓氏) 출신으로, 1357년(공민왕 6) 후궁으로 간택되어 입궐하였다. 1371년 당시 공민왕의 아들로 알려진 왕우(훗날 우왕)의 법적 어머니로 지정되었으며, 1374년 공민왕이 시해된 후 왕우가 즉위하자 '선명제숙경의순정왕후(宣明齊淑敬懿順靜王后)'라는 시호가 추증되었다. 같은 해 9월에는 그녀의 증조, 조부, 부친, 외조부에게 관작이 추증되었다.

순정왕후의 사망 시점은 기록에 정확히 명시되지 않았으나, 친척 한략(韓略)의 진술에 따르면 사망 직후 화장되어 개성의 봉은사(奉恩寺) 솔숲에 임시로 안치되었다가, 1376년(우왕 2) 윤9월 무신일에 유골(골호)을 파내어 고려 태조 왕건의 현릉(顯陵) 근처인 의릉으로 이장(천장)되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공민왕의 혼전인 혜명전(惠明殿)에 공민왕의 신주와 함께 순정왕후의 신주도 함께 모셔졌다.

의릉은 우왕대에는 왕후의 능으로 존속되었으나, 1389년(공양왕 1) 12월 임인일, 이성계 일파가 위화도회군 이후 정권을 장악하고 우왕과 창왕이 공민왕의 혈통이 아닌 승려 신돈(辛旽)의 자식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폐위시키면서, 순정왕후의 의릉도 함께 철폐되었다. 이로 인해 능의 원형은 소실되었으며, 현재까지 북한 측의 발굴 조사에서도 의릉의 유존 여부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고려 시대에 왕후나 태후에게 휘호와 함께 능호(陵號)를 붙이는 관행이 있었으며, 원나라 간섭기라는 지정학적 상황 속에서도 공민왕의 비에게 '순정왕후'라는 시호와 '의릉'이라는 능호가 부여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다만 의릉은 현재 북한 개풍군 일대에 위치할 것으로 추정될 뿐, 유적의 보존 상태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고고학적 확인이 필요하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