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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보덕각

의령 보덕각(宜寧 報德閣)은 경상남도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 기강나루 언덕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비각(碑閣)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망우당 곽재우(郭再祐) 장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공덕비(功德碑)를 보호하는 건물로,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6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항목 내용
한자 宜寧 報德閣
영문 Bodeokgak Pavilion, Uiryeong
소재지 경상남도 의령군 지정면 기강로 379 (성산리 82)
지정일 1983년 7월 20일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6호
수량 1동
건축 양식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목조와가
관리자 곽정순

역사

  • 1592년(선조 25년) : 임진왜란 발발. 곽재우가 의령 기강에서 의병 10여 명을 이끌고 왜선 14척을 공격해 격파. 이는 곽재우의 첫 전투이자 조선군의 첫 승리였다(이순신의 옥포해전보다 하루 앞섬).
  • 1739년(영조 15년) : 곽재우의 전공과 덕을 추모하기 위해 승전지였던 기강에 공덕비(보덕불망비)를 세움.
  • 1785년(정조 9년) : 비문을 새겨 완성. 비문은 조선 후기의 문신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이 지었다.
  • 1983년 7월 20일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6호 '보덕각'으로 지정.
  • 2018년 12월 20일 : 명칭을 '의령 보덕각'으로 변경.
  • 2019년 5월 16일 : 보덕각에 포함되어 있던 '의령 쌍절각'이 별도의 문화재자료 제656호로 분리 지정.

비문(碑文)

비의 앞면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有明朝鮮國紅衣將軍忠翼公郭先生報德不忘碑" (유명조선국 홍의장군 충익공 곽선생 보덕불망비)

"명나라 조선국 홍의장군 충익공 곽선생의 덕에 보답하여 잊지 않는다는 비"

  • 홍의장군(紅衣將軍) : 곽재우가 붉은 옷(홍의)을 입고 의병을 지휘한 데서 유래한 별칭.
  • 충익공(忠翼公) : 곽재우에게 내려진 시호(諡號).
  • 보덕불망(報德不忘) : 후세 사람들이 그 덕을 잊지 않고 보답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라는 뜻.

비의 뒷면에는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의 의병 활동 내용과 일대기가 기록되어 있다.


관련 인물: 곽재우(郭再祐, 1552~1617)

  •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綬), 호는 망우당(忘憂堂).
  • 임진왜란(1592)이 발발하자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켜 홍의장군(紅衣將軍)으로 불림.
  • 기강 전투에서 첫 승리를 거둔 후, 의령·창녕·합천·성주 등지에서 왜군을 격파.
  • 정암진 도하작전을 펼친 왜군을 대파하여 경상우도를 방어하고, 왜군의 호남 진출을 저지.
  • 낙동강 수로를 따라 이동하는 적선을 기습하여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전술로 유명.

주변 문화재

  • 의령 쌍절각(宜寧 雙節閣)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56호. 곽재우의 두 아들(곽준, 곽찬)의 충절을 기리는 건물. 원래 보덕각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2019년 별도 지정.
  • 기강 느티나무 : 천연기념물 제493호. 곽재우가 이 나무에 북을 걸어 군사 훈련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짐.

의의

의령 보덕각은 임진왜란 초기 조선 의병의 첫 승전을 기념하는 상징적 장소이다. 곽재우가 기강에서 거둔 승리는 조선군의 사기를 높이고 왜군의 호남 진출을 차단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비각은 곽재우의 구국 정신과 의병 활동을 후세에 전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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