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우옌짜이(베트남어: Nguyễn Trãi, 阮廌, 1380년~1442년)는 베트남 레 왕조의 건국 공신이자 학자, 시인, 정치가이다. 필명은 육재(Ức Trai, 抑齋)이다.
생애 초기
응우옌짜이는 1380년, 대월(당시 베트남)의 수도 탕롱(Thăng Long, 현재의 하노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응우옌피카인(Nguyễn Phi Khanh)은 쩐 왕조 말기의 학자이자 관리였으며, 외할아버지 쩐응우옌단(Trần Nguyên Đán)은 쩐 왕조의 고위 관리였다. 유교 학자 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호 왕조(1400~1407) 시기에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다.
명나라 점령과 독립 전쟁
1406년, 명나라의 영락제가 대월을 침공하여 제4차 식민 지배 시기가 시작되었다. 1417년, 응우옌짜이는 지방 호족 출신의 레러이(Lê Lợi)가 이끄는 봉기에 가담하여 그의 최고 고문이자 전략가, 선전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레러이의 정치적 선언문을 작성하고, 명나라에 맞서는 반란에 베트남 민중이 참여하도록 설득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417년부터 1427년까지 이어진 독립 전쟁(람선 봉기)에서 응우옌짜이는 게릴라 전략 수립, 외교 문서 작성, 명나라 지휘관들과의 협상 등을 담당하였다. 1427년, 치랑-스엉장 전투에서 명나라의 대규모 증원군이 격파된 후 명나라는 철수하였고, 레러이는 레 왕조를 건국하였다. 응우옌짜이는 이 승리를 기념하는 유명한 선언문인 '평오대고(Bình Ngô đại cáo)'를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 왕조 시기와 말년
전쟁 후 응우옌짜이는 레러이(레 태조)로부터 높은 지위를 부여받았으나, 궁정 내부의 권력 다툼과 측근들의 견제로 인해 섭정으로 임명되지는 못했다. 레 태조 사후 섭정이 된 레삿(Lê Sát)과의 갈등 속에서 응우옌짜이는 조정 생활이 점점 어려워지자 하노이 북쪽 치린(Chí Linh) 지역으로 은퇴하여 시 창작과 학문에 몰두하였다.
화(禍)와 사후
1442년, 레 태종(레러이의 손자)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응우옌짜이의 첩이었던 응우옌티로(Nguyễn Thị Lộ)가 태종을 암살했다는 혐의가 제기되었다. 이 사건으로 응우옌짜이는 삼족이 멸문되는 화를 당하였다. 이후 1464년, 레 성종(레 탄톤)이 즉위하면서 응우옌짜이의 명예가 회복되었고, 그의 유족들에게 사면이 내려졌다.
학문과 문학적 업적
응우옌짜이는 베트남 역사상 가장 중요한 문학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그의 시문집으로 '육재시집(Ức Trai thi tập)'이 전해지며, 베트남 한문 문학과 국문(쯔놈) 문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1980년, 유네스코(UNESCO)는 그의 탄생 600주년을 기념하여 그를 세계 문화 인물로 지정하였다. 현재 베트남 전역의 많은 거리와 학교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