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은사기념과학관

은사기념과학관(恩賜記念科學館)은 한반도 최초의 과학관으로, 현 국립중앙과학관의 전신이다. 1925년 일본 다이쇼 천황의 결혼 25주년을 기념하여 사회교화사업 장려 명목으로 조선총독부에 하사된 은사금(恩賜金) 17만 엔을 재원으로 설립되었다. 1926년 10월부터 준비를 거쳐 1927년 5월 10일, 서울 남산 왜성대(倭城臺)에 있던 구 조선총독부 청사(1907년 통감부 청사로 지어진 2층 목조 건물)를 개조하여 14개 상설전시관으로 개관하였다. 초대 관장은 해군 소장 출신의 시게무라 기이치(重村義一)였다.

과학관의 명칭인 '은사기념'은 천황의 은혜(恩賜)를 기념한다는 의미로, 정문 현판에는 조선총독부 총독이 보낸 휘호 "군은만배심(君恩萬倍深: 천황의 은혜가 매우 깊다)"이 걸려 있었다. 이는 과학 기술의 혜택이 천황과 일본의 은사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식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전시는 1층에 전기·기계·가정용품, 2층에 기초과학·동식물 분야로 구성되었으며, 부전강수력발전소 모형이나 경성 도시계획사업 등 일본의 문명적 혜택을 선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일본 우에노 과학관을 모델로 삼았으나, 실질적으로는 식민지 개발과 산업 발전에 쓰이는 도구·기계·생산물을 전시하는 '일본 산업 홍보관'에 가까웠다는 평가가 있다. 부대 사업으로 강연, 영화 상영, 지방 순회 강연, 인쇄 출판, 각종 전람회, 어린이날 행사 등이 개최되었으며, 단체 관람을 통해 하루 평균 280여 명, 어린이날 행사에는 평균 454명(최대 1,000명 이상)이 참여하였다.

1932년부터 1939년까지 월간지 『과학관보(科學館報)』를 발행하였으며, 조선의 공업화에 따라 조선인들의 과학 기술 관심이 높아지면서 조복성(趙福成)과 같은 조선인 박물학자와 교류하며 조선산 동식물과 광물을 수집·전시·연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이후로는 전시 체제에 편입되어 방공 기술 등 군사 기술을 전시하고 사상 통제와 전쟁 수행에 활용되었다.

1945년 광복 당시 면적 3,000평에 약 11만 점의 전시물이 소장되어 있었으나, 한국전쟁 시기에 건물과 소장품 모두 전소(全燒)하였다. 해방 이후 국립과학박물관(國立科學博物館), 1948년 문교부 산하 국립과학관(國立科學館)을 거쳐 1990년대 현재의 국립중앙과학관(國立中央科學館)으로 변천하였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