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무제 [隆武帝]
융무제(隆武帝, 1602년~1646년)는 중국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에 걸쳐 존재했던 남명(南明) 정권의 제2대 황제이다. 휘(諱)는 주율건(朱聿鍵)이며, 묘호는 소종(紹宗)이다. 연호인 '융무(隆武)'를 따서 융무제라고 부른다. 명나라 정통 황제 계보로는 제18대 황제에 해당한다.
출생과 가계
융무제는 1602년 명나라의 제후국이던 당왕(唐王)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명 태조 홍무제(洪武帝)의 23번째 서자로 당(唐) 지역에 봉작된 주경(朱桱)의 8대손으로, 명나라 황실과는 촌수가 먼 친척 관계였다. 그의 아버지 주기성(朱器墭)은 당단왕(唐端王) 주석황(朱碩熿)의 서자(庶子)였다.
당왕 즉위와 활동
1632년 할아버지 주석황의 뒤를 이어 당왕에 올랐는데, 이는 아버지 주기성이 일찍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당왕에 오른 뒤 그는 아버지 주기성을 추존하여 유왕(裕王)이라 하였다. 이후 청(후금) 군대가 명나라 변경을 위협하자 숭정제에게 근왕병을 이끌고 나서기를 청원했으나 거절당했고, 황명을 어기고 독자적으로 근왕병을 조직한 일로 처벌을 받기도 하였다.
남명 홍광제의 몰락과 즉위
1645년 남명 제1대 황제인 홍광제(弘光帝)가 청나라 군대에 포로로 잡혀 처형되자, 명나라 부흥 세력에 의해 황제로 옹립되었다. 그는 복건성(福建省) 일대를 근거지로 삼아 즉위하였다. 다만 명 부흥 세력 내부에서 다른 분파가 또 다른 인물을 황제로 옹립하는 등 즉위 과정에서 혼선이 있었다.
통치와 최후
융무제는 복건성의 지리적 한계와 군사력 부족, 관료들의 분열 등으로 인해 통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정성공(鄭成功)을 중용하기도 하였다. 1646년 복건성으로 진격한 청나라 군대에 의해 포로로 잡혔다. 그는 단식으로 저항하다 그해 4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가계와 추존
융무제는 황제로 즉위하자 자신의 4대 선조를 황제와 황후로 각각 추증하고 묘호와 시호를 올렸다. 양황후 증씨(曾氏)에게서 아들 주림원(朱琳源)을 두었으나, 40세가 넘어 얻은 아들이라 일찍 요절하여 후계자 없이 사망하였다. 그의 사후 명 부흥 세력은 다시 후계자 선정을 놓고 내분에 휩싸였다.
연호
그가 사용한 연호인 '융무'는 1645년부터 1646년까지 약 1년 6개월가량 사용되었다. 1646년 8월 복주(福州)가 청군에게 함락되면서 그의 정권은 붕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