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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원군

율원군(栗元君)은 조선 전기의 왕족이자 문신·무장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종(李倧, 또는 李徖), 자는 유안(幼安)이며, 시호는 양경(襄頃) 또는 양환(襄桓)이다. 1433년(세종 15)에 태어나 1476년(성종 7) 1월 17일에 사망하였다.

가계 및 신분

율원군은 조선 제3대 왕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의 손자이며, 효령대군의 셋째 아들인 보성군(寶城君) 이합(李㝓)의 차남이다. 어머니는 청풍군부인 합천이씨로, 광록시소경 이무창의 딸이다.

생애 주요 활동

1447년(세종 29) 광성대부(光成大夫) 율원령(栗元令)에 처음 책봉되었고, 이후 율원정·율원부정 등을 거쳤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좋아하고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하여 종실 내에서 촉망받았으며, 세조가 종친 중 학식과 무예가 출중한 자를 선발할 때 문과 무과 양쪽에서 모두 선발되어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1463년(세조 9) 평안도 방산진(方山鎭)에 여진족이 침입하자 명선대부(明善大夫)로 임명되어 이를 방어하였고, 그 공을 인정받았다.

가장 큰 공적은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李施愛의 亂) 진압이다. 당시 총통도장(銃筒都將)으로서 총통군 1,350명을 거느리고 귀성군 이준을 도와 난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적개공신(敵愾功臣) 3등에 녹훈되었고, 중의대부(中義大夫) 율원군으로 승작되었으며, 함길남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단서철권(丹書鐵券)을 하사받았다.

1468년(세조 14) 병으로 소환되어 내직으로 돌아왔고, 정의대부(正義大夫) 율원군에 임명되었다가 1476년 병으로 사망하였다.

성품과 평가

성품이 침착하고 진득하여 일을 처리할 때 세밀히 살폈으며, 사람을 대접할 때 겸손하고 공손하였다고 《조선왕조실록》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전한다. 사후 성종은 조회를 폐하고 조문·치제를 내렸으며, 시호 양경(襄頃)이 내려졌다. '양(襄)'은 일로 인하여 공이 있음을, '경(頃)'은 민첩하고 경신(敬愼)함을 뜻한다.

묘소 및 가족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왕릉골에 있으며, 부인 무안현부인 동래정씨와 쌍분을 이루고 있다. 불천지위(不遷之位)를 받아 사당은 부조묘(不祧廟)로 지정되었고, 재실은 충의재(忠義齋)라 명명되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으며, 아들은 여양군 이자겸이다. 그의 증손녀는 청릉부원군 심강과 혼인하였고, 그 딸이 조선 제13대 왕 명종의 왕비인 인순왕후 심씨이다. 즉, 율원군은 인순왕후의 외증조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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