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자승(尹滋承, 1815년 ~ 사망 연도 미상)은 조선 후기 개항기 시기에 활약한 관료·문신이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중무(仲茂)이다. 경상도 창녕 출신으로, 윤원진(尹元鎭)의 아들이다.
생애 및 경력
- 과거 급제: 1859년(철종 10) 증광문과에 갑과(科)로 급제하였다.
- 관직: 급제 후 이조참의·사간원대사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865년(고종 2)에는 전라도를 담당한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지방 관리들의 부정을 단속하였다. 이후 병조참판·예조참판·호조참판·성균관대사성 등 다수의 중앙 관직을 맡았다.
- 외교 사절: 1874년 진하 겸 사은사(進賀兼謝恩使)의 부사로 청나라에 파견되어 국제 정세를 파악하였다. 1876년 강화도 조약(江華島條約) 체결 시 도총부 부총관 신헌(申櫶)의 부관으로서 실무에 참여하였다.
- 후기 활동: 1881년 경상도관찰사, 사헌부대사헌, 예조·형조판서 등을 거쳐 도총관을 역임하였다. 또한 예문관·홍문관 제학, 시강원우빈객(侍講院右賓客) 등 학문 기관에서도 활동하였다.
사망
윤자승의 정확한 사망 연도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으며, 사망 연도는 ‘미상’으로 표기된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윤자승”, 2023년 2월 7일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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