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로(尹元老, 1502년~1547년 12월 26일)는 조선시대 중기의 무신이자 척신(戚臣)이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파산부원군 윤지임(尹之任)의 아들이자 윤원형(尹元衡)의 형이고,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동생이다.
생애
1517년 누나인 문정왕후가 중종의 왕비로 간택되면서 왕실의 외척이 되었다. 1536년 감역(監役)에 임명되었다가 곧 6품으로 승진하였으나, 갑작스러운 승진으로 대간의 논박을 받고 체직되었다. 1537년 좌사어(左司禦)로 근무할 당시 권신 김안로(金安老)와 대립하다가 파직되고 유배되었다. 같은 해 김안로가 사사(賜死)된 후 풀려나 관직에 복귀하였다.
1544년(중종 39) 윤임(尹任)과 다투다가 다시 파직·유배되었다. 중종이 죽고 인종이 즉위하자 대윤(大尹) 세력이 득세하면서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이후 동생 윤원형, 조카 윤춘년 등과 함께 윤임 축출 계획을 세웠다.
1545년 인종이 재위 8개월 만에 승하하고 명종이 즉위하자 풀려나 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이 되었다. 문정왕후·윤원형·이기(李芑) 등과 함께 인종의 장례를 박하게 치르도록 하였다. 같은 해 7월, 대윤 일파를 축출하려다가 영의정 윤인경(尹仁鏡) 등의 탄핵을 받고 전라도 해남으로 유배되었다가 1년 만에 풀려났다.
을사사화(乙巳士禍)로 윤임·유관(柳灌) 등 대윤 일파가 제거된 후 석방되어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에 기용되었다. 그러나 공신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불평하다가 동생 윤원형과의 정쟁에서 패배하여 1546년 다시 탄핵을 받고 파직·유배되었으며, 이듬해 배소에서 사사(賜死)되었다.
가계
조부는 윤욱(尹頊)이며, 어머니는 이덕숭(李德崇)의 딸 전성부부인 전의 이씨(全城府夫人 全義 李氏)이다. 정부인은 평창 이씨 이량(李亮)의 딸이다. 아들 윤백원(尹百源)은 중종과 장경왕후의 딸인 효혜공주와 연성위 김희(金禧)의 딸 김선옥(金善玉)과 결혼하였는데, 이는 정치적 대립자였던 김안로의 손녀였다. 측실 여흥 민씨 사이에 서자 윤조원이 있다.
정치적 위상
윤원로는 동생 윤원형과 함께 소윤(小尹) 세력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윤임을 중심으로 한 대윤(大尹) 세력과 대립하였다. 대윤의 영수 윤임은 그의 아버지 윤지임과 8촌 형제 간으로, 두 세력은 인종과 명종의 즉위 과정에서 격렬한 권력 다툼을 벌였다. 윤원로는 동생 윤원형과도 권력 다툼을 벌이다가 결국 윤원형과 문정왕후에 의해 제거되었다.